보험가입자의 과거 병력 뒤늦게 안 보험사, 기한 지난 계약 해지 통보 무효

중앙일보

입력

보험 가입자가 과거 병력을 알리지 않고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이 지난 보험사의 계약 해지 통보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보험금 청구한 가입자의 '계약 전 5년 내 관련 진단' 이유로 계약 해지 소송 #대법원, 해지 사유 안 날부터 한 달 지나 '해지권' 유효기간 넘었다고 판단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케이비손해보험이 보험 가입자 이모(40)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이씨는 2008년 1월 케이비손해보험에 질병 보험을 가입했다. 가입신청서에 5년 이내 병력 유무를 묻는 항목에 ‘아니오’라고 표기했고, 문제 없이 보험에 가입됐다.

종신보험 이미지. [중앙포토]

종신보험 이미지. [중앙포토]

이듬해 7월 이씨는 말기 신장병 판정을 받고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다. 그런데 보험사가 과거 병력을 조회해보니 이씨가 보험 가입 3년 전인 2005년 2월에 ‘자반증 신염’이라는 신장 질환 진단을 받은 게 확인됐다. 보험사 측은 사전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며 보험 계약 해지를 위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이씨가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씨는 항소했다. 1심 재판과 관련한 법원의 통보를 받지 못해 재판을 준비하지 못했고, 보험사 측이 보험계약 해지를 통보한 시점이 상법이 정한 제척기간을 초과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이 이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보낸 소장과 판결문은 이씨가 아닌 임차인이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법원의 기록에는 수령인이 ‘배우자’로 기록돼있었다. 또 이씨는 보험설계사의 조언에 따라 보험 가입서에 과거 병력을 기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심 법원은 이씨가 법원의 재판 관련 통지를 제때 받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보험사 측의 계약 해지 통보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부장판사 김우진)는 “피고가 보험 계약 체결 당시 신장조직검사를 받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것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보험계약 관리사원의 권유에 따른 것이란 주장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은 보험사가 이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 시기에 주목했다. 상법 제651조에 따르면 보험계약 당시 계약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았거나 부실하게 고지했을 때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이내,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한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 ‘제척기간’ 내에 보험사가 피보험자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거나 소장 부본이 당사자에게 전달돼야 효력이 있다고 봤다. 보험사가 이씨의 과거 병력을 알게 된 건 2009년 11월 2일 한국의료분석원의 의료자문결과 회신을 통해서였다. 보험계약 해지를 위한 소송을 제기한 건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2010년 1월 28일이었다.

재판부는 “원고는 피고가 고지 의무를 위반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거나, 1개월 이내에 보험계약 해지 의사가 담긴 사건의 소장 부본이 피고에게 적법하게 송달되지 않아 상법이 정한 제척기간을 넘겼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심이 이런 사정들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고 피고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적법하게 해지됐다고 단정한 것은 상법이 정한 해지권의 제척기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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