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드 트집에 우는 한국 농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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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가진 지난 6일(현지시간) 누구보다도 결과에 귀를 기울인 이들이 있다. 전남 고흥의 유자 농가들이다. 이들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배치 결정 후 중국의 보복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보도가 나오자 크게 실망했다.

유자차·홍삼 등 통관 고의 지연시켜 #“상표 글씨 크기 차이난다”며 퇴짜 #라벨 수백만원 어치 폐기 후 재제작 #“다섯 달에 6억 피해 … 생계 막막”

고흥 유자 농가들이 이역만리 미국에서 열린 두 정상의 만남에 남다른 관심을 쏟은 사연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 유자차를 수출하는 고흥 두원농협 유자가공사업소 측은 1월 말 현지에 파견을 나가 있는 NH무역 직원에게서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중국 당국이 두원농협에서 보낸 1㎏들이 유자차 3000상자(1상자 12병)의 통관을 고의로 지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중국 당국이 ‘1’과 ‘千(천)’의 크기가 미세하게 다르다며 트집을 잡은 상표(왼쪽)와 새로 만든 상표.

중국 당국이 ‘1’과 ‘千(천)’의 크기가 미세하게 다르다며 트집을 잡은 상표(왼쪽)와 새로 만든 상표.

중국 당국은 유리병 겉에 부착된 상표의 표기를 문제 삼았다. ‘淨含量(정함량) 1千克(천극·킬로그램)’ 표기에서 숫자 ‘1’과 ‘千’의 크기가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는 주장이었다. 채 0.5㎜도 되지 않는 차이였다. 중국 정부는 으름장을 놓으며 지난달 28일에야 통관을 시켜줬다. 평소 사나흘이면 끝났을 통관 절차가 두 달이나 소요되면서 중국 내 마트 등지에 물건을 공급하지 못해 1억원이 넘는 피해가 났다.

사드 체계에 대한 중국 정부의 무역 보복 불똥이 고흥 유자 농가에까지 튀었다. 사드 배치 여파가 시골 마을까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농가들은 당혹했다.

중국 수출이 줄어 두원농협 유자가공사업소 창고에 쌓여있는 유자차 제품. [고흥=프리랜서 장정필]

중국 수출이 줄어 두원농협 유자가공사업소 창고에 쌓여있는 유자차 제품. [고흥=프리랜서 장정필]

두원농협은 중국 의 횡포에 멀쩡한 유자차 라벨 수백만원 어치를 폐기하고 새로 제작했다. 중국 정부의 요구대로 숫자 ‘1’의 크기를 늘려 ‘千’에 맞췄다.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아 어쩔 수 없었다. 두원농협은 유자차 전체 생산량 중 60%를 수출하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중국으로 보낸다. 중국 수출액이 한해 30억원 안팎에 달한다. 유자차 수출 타격은 지난해 말 본격화했다. 1년 중 매출액이 가장 높은 시기인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간 두원농협 측의 유자차 중국 수출액은 11억6000여만원에 불과했다. 전년도 같은 기간 17억5000여만원에 크게 못 미친다. 유자차 수출이 크게 줄면서 창고에는 재료만 쌓여가고 있다.

홍삼 제품에 대한 중국의 트집도 있었다. 경기 김포파주인삼농협은 중국에 홍삼과 홍삼분말 등을 수출해왔는데 중국 세관 측에서 포장재 글자 크기 등을 문제삼으면서 수출이 지연되고 있다. 조재열 김포파주인삼농협조합장은 “12억원 상당의 수출이 늦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두원농협 고중석 유자가공사업소장은 “유자를 수매하는 11월 전까지 사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상당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흥=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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