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야기] 염증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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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알고 있는 듯하지만 막상 답변이 쉽지 않은 질문이다.

대부분 염증이 생기면 무조건 괴로운 질환으로 안다. 짜증나고 귀찮기만 한 불청객으로 여긴다. 위염.간염.관절염.치주염 등 평생 한두 가지 염증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증이 없다면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염증은 생존을 위해 인체가 동원하는 불가피한 방어현상이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염증은 혈관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감염이 됐든, 외상이 됐든 백혈구와 영양분을 상처 부위로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선 다량의 혈관이 필요하다. 염증이 생기면 발갛게 붓고 아픈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염증은 마냥 내버려두는 것이 좋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비록 수백만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인체가 획득한 방어수단이지만 아직 정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염증을 통해 생존하지만 반대급부도 치러야한다.

대표적 사례가 암이다. 염증 과정에서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느라 세포를 쉼없이 만들어 내다 보면 암세포란 불량품이 생길 수 있다. 간염이 오래 되면 간암이 잘 생긴다. 위염도 오래 되면 위암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암의 뿌리는 오래된 염증이다. 부위를 막론하고 몸 속에 염증이 생기면 암 예방을 위해서라도 빨리 치료하는 것이 좋다. 실제 어떤 이유로든 대표적 소염제인 아스피린을 평소 많이 복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각종 암에 덜 걸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천식에도 염증이 중요하게 관여한다. 과거엔 좁아진 기도를 다시 넓혀주는 기관지확장제가 중요한 치료였다. 그러나 최근 기도를 늘리는 것보다 염증을 없애는 쪽으로 천식 치료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기도가 많이 좁아지지 않아도 염증이 오래 남아 있게 되면 발작적 기침과 호흡곤란 등 증상이 훨씬 악화하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천식 환자에겐 기관지 확장제보다 스테로이드 흡입분무제 등 염증 치료제가 권유되고 있다.

관절염 환자들은 자신이 먹는 소염진통제가 단순히 증상만 가라앉히는 대증요법의 하나라고 경시한다. 그러나 소염진통제는 염증 자체를 억제하는 훌륭한 근본치료의 하나다. 인공관절 등 신기술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진 소염진통제를 열심히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관절염 치료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염증에 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염증이 있다면 왜 염증이 생겼는지 주목해야 한다. 생선 가시가 목에 박혀 있는데 가시를 뽑지 않고 소염제만 먹는다고 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염증에 관한 한 최선의 치료는 원인을 직접 제거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원인을 잘 모르거나 원인 제거가 어려운 경우(유감스럽지만 대부분의 만성 염증이 여기에 해당한다)라면 염증 자체를 가라앉히는 데 주력해야한다. 어떠한 원인이든 오래된 염증은 그 자체로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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