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최정의 '한 경기 4홈런'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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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주전 3루수 최정(30)에게 2017년 4월 8일은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한 경기에서 홈런 4개를 쳤기 때문이다. 9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만난 최정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그는 "정말 신기하고 이상한 하루였다"고 했다.

최정은 8일 NC 다이노스와의 홈경기에서 5타수 4안타(4홈런)·6타점·4득점으로 맹활약했다. 한 경기 4홈런은 박경완(은퇴),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에 이은 KBO리그 역대 세 번째 기록이다. 2000년 5월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박경완(당시 현대)이 처음 기록했고, 2014년 9월 4일 목동 NC전에서 박병호(당시 넥센)가 4홈런을 쳤다.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NC다이노스전이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진행됐다. SK 최정이 1회말 2사때 좌익수 뒤로 솔로포를 터트리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인천=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4.08/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NC다이노스전이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진행됐다. SK 최정이 1회말 2사때 좌익수 뒤로 솔로포를 터트리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인천=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4.08/

최정은 1회 말 좌월 솔로포, 3회 말 좌월 2점포로 연타석 홈런을 장식했다. 7회 말과 8회 말에도 각각 2점포와 솔로포를 쏘아 올리며 한 경기 4홈런을 완성했다. SK는 9-2로 이기면서 7경기 만에 올 시즌 첫 승리를 거뒀다. 올해 SK 지휘봉을 잡은 트레이 힐만 감독도 한국에서 처음으로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한 경기에 홈런 4개를 날릴만한 징조는 있었을까. 최정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상하게 경기 전부터 신이 났다. 6연패에 빠져있었지만 수비훈련 때 선수들이 모두 신이 나 있었다. 내야수끼리 수비연습을 하는데 너도나도 다이빙을 하고 크게 웃으면서 시끄럽게 훈련을 마쳤다. 다들 미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분위기가 그대로 경기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박경완·박병호에 이어 프로야구 역대 3번째 #최정, 4번째 홈런 때리는 순간 '나 미쳤구나'

첫 홈런이 터진 1회 말 2사. 상대 선발 구창모를 상대로 풀카운트 상황에서 6구 직구(시속 141㎞)를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겼다. 비거리 120m. 그 때만 해도 최정은 평소처럼 담담했다.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NC다이노스전이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진행됐다. SK 최정이 3회말 무사 3루 좌익수 뒤로 투런포를 터트리고 있다.인천=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4.08/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NC다이노스전이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진행됐다. SK 최정이 3회말 무사 3루 좌익수 뒤로 투런포를 터트리고 있다.인천=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4.08/

3회 말 무사 주자 3루에서 구창모의 슬라이더(시속 127㎞)를 받아쳐 또 홈런(비거리 110m)을 치자, 최정의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SK 벤치도 술렁였다. 그리고 맞이한 5회 3번째 타석. 정경배 타격코치는 최정에게 "변화구를 노려치라"고 했다. 그런데 스트라이크로 들어오는 변화구를 치라는 것이었는데, 최정은 볼이었던 초구 커브에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다. 결국 우익수 뜬공으로 3연타석 홈런은 치지 못했다.

오히려 최정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뜬공이었다. 7회 말 무사 주자 1루에서 4번째 타석에 들어선 최정은 바뀐 투수 배재환을 상대로 초구 직구(시속 141㎞)를 향해 가볍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비거리 120m. 한 템포 쉬었던 홈런이 또 터져나왔다. 그는 "한 경기에서 처음으로 홈런 3개를 쳐서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이날 전까지는 타석에 서는 게 불편하고 힘겨웠다. 그러다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공을 더 오래보게 됐다. 이날은 최대한 편한 자세로 방망이를 휘두르자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NC다이노스전이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진행됐다. SK 최정이 7회말 무사 1루때 좌익수 뒤로 투런포를 터트리고 있다.인천=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4.08/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NC다이노스전이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진행됐다. SK 최정이 7회말 무사 1루때 좌익수 뒤로 투런포를 터트리고 있다.인천=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4.08/

마지막 타석이었던 8회 말 2사. 최정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8회에는 정말 타석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3홈런을 친 기분을 좀 더 길게 만끽하고 싶었다. 마지막 타석에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흐름을 이어가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바뀐 투수 윤수호의 직구(시속 142㎞)를 받아쳐 또 왼쪽 담장을 넘겼다. 비거리 105m. 순간 최정의 머리를 스친 한 마디. '나 미쳤구나!'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NC다이노스전이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진행됐다. SK 최정이 8회말 2사때 좌익수 뒤로 솔로포를 터트리고 있다.인천=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4.08/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NC다이노스전이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진행됐다. SK 최정이 8회말 2사때 좌익수 뒤로 솔로포를 터트리고 있다.인천=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4.08/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 무대에 온 트레이 힐만 SK 감독도 깜짝 놀랐다. 힐만 감독은 "야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한 경기 4홈런을 봤다. 3홈런도 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 4홈런을 보다니…최정은 정말 놀라운 타자"라고 칭찬했다.

한 경기 4홈런을 날린 비결은 뭘까. '타이밍'이었다.

정경배 SK 타격코치는 "최정이 최근 공을 너무 오래 보고 쳤다. 예를 들어 직구에는 방망이가 자기 타이밍에 잘 나가다가 슬라이더가 오면 더 완벽하게 치려고 자기 스윙을 안 하고 공을 오래 쳐다봤다. 그러면서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흐트러졌다. 그래서 스탠스(타격 자세 중 두 발의 위치) 폭을 조금 줄였다"고 했다.

최정의 고민은 4홈런을 친 다음 경기였다. 그는 9일 NC전을 앞두고 "오늘이 월요일이면 좋겠다. 하필 유독 약했던 이재학(NC)과 대결이라 걱정이 더 크다. 어제 홈런 친 생각은 전부 지우고 나갈 것"이라고 했다. 최정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3타수 2안타·1득점으로 활약했다. 이날 전까지 25타수 1안타로 약했던 이재학을 상대로는 1회 첫 타석에서 깨끗한 안타를 뽑아냈다.

최정은 시즌 초반부터 막강한 화력을 뽐냈지만 차분했다. 그가 강조한 한 마디. "설레발 치지 말자."

인천=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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