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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이제야…회복된 우병우 인사, 정리된 최순실 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전횡과 최순실 씨의 개입으로 영향을 받았던 외교부 인사가 원상 회복되고 있다.


외교부는 7일 이명렬 국립외교원 경력 교수를 주요코하마 총영사에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춘계 공관장 인사 대상은 대사 10명과 총영사 3명. 그중 이 신임총영사 임명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외교부 내 대표적인 ‘우병우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1988년 입부한 이 총영사(외시 22회)는 국립외교원 경력 교수로 자리를 옮기기 전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을 지냈다. 2014년 12월 오룡호 침몰 사고 당시 그는 부산 서구 사조산업 부산본부에 꾸려진 사고대책본부를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과 같이 찾았다. 그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로 선원 가족들의 질타를 듣는 사진은 여러 언론 매체에서 보도됐고 외교가에선 “진정성 있는 태도가 인상 깊다”며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총영사는 지난해 초 정부가 아시아권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시행한 비자 수수료 면제 조치로 인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발단은 2015년 말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였다. 비자 업무의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회의에서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단체 관광객에 대한 비자 수수료(1인당 15달러, 1만8000원)를 전면 면제하기로 했다.

문제는 비자 수수료가 재외 공관에서 비자 담당 보조 업무를 하는 현지인 행정원들의 인건비로 사용된다는 것. 수수료를 면제하면 현지인 고용을 유지하기가 힘들고 비자 발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모순이 벌어지게 됐다.

외교부 인사 파동은 이후 이를 수습하기 위한 관계부처 협의 과정이 불씨가 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 측은 2016년 1월 법무부에 상황을 설명하고 “현지 인력이 줄어들면 비자 발급 업무가 어려워진다. 신규 인력을 채용하려면 연간 20억원이 필요한데, 법무부는 어떤 재원 마련 대책을 갖고 있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 경제·문화수석실에도 참조로 사본을 보냈다. 이에 따라 재원 마련 협의를 위해 외교부, 법무부, 기획재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렸고 우선 외교부 예산을 전용해 현지 행정원들의 월급을 해결하기로 결론이 났다. 120명의 현지 고용 인력 중 110명 이상이 해고 없이 계속 일하게 됐다.

그런데 직후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이 외교부 영사국이 ‘항명’을 했다고 이를 문제 삼았다. “1월 6일 법무부에 공문을 보내면서 왜 청와대에까지 이런 내용을 전달했느냐.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한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이유였다고 한다. 관련 당국자들은 모두 민정수석실의 조사를 받았다. 당시 이 국장도 13시간씩 두 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았는데 진술을 받는 게 아니라 “항명을 시인하라”고 고성만 지르는 조사였다고 한다.

결국 조사는 징계성 인사조치로 이어졌다. 일본 지역 공관장으로 부임 예정이었던 이 국장은 국립외교원으로 좌천됐고, 오진희 영사서비스과장은 유럽국 중유럽과장으로 이미 발령까지 났는데 이를 취소하고 통일준비위원회에 파견했다. 정진규 심의관(부국장급)은 험지 근무가 고려되다 심의관으로 부임된 지가 얼마 안 돼 자리를 지켰다. 당시 조태열 2차관이 직접 우 수석을 만나 설득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원상 회복' 조치는 우 수석이 물러난 뒤 지난해 말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오진희 과장은 다시 외교부로 돌아와 원래대로 중유럽 과장을 맡았다. 정진규 심의관은 개발협력국장으로 승진했다. 7일 이 총영사의 임명으로 모두 마무리가 된 셈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당시 일로 당사자들 뿐 아니라 부 내부적으로 직원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제라도 정상으로 돌아와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구속 수감된 최순실 씨의 추천으로 주미얀마 대사에 임명됐던 유재경 대사는 6일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1월 특검 조사를 통해 최순실씨가 면접까지 보고 추천한 인사란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두 달이나 지나서다. 외교가 소식통은 “특검 조사를 받고, 최순실씨 공소장에 이름이 나왔는데도 정상업무를 보는 유 대사에 대해 비판이 많았다. 심지어 미얀마 정부 인사들조차도 ‘언제까지 근무하냐’고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일 지경이었다”고 귀띔했다.

특검 조사 결과 유 대사는 정부가 미얀마에 추진한 원조개발사업(ODA) 과정에서 최순실씨가 이권을 챙기기 위해 낙점한 인사로 파악됐다. 외교부는 유 대사의 사직서를 수리할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 ‘최순실 인사’가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김인식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이사장이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특검은 최씨가 유 대사와 같은 이유로 김 이사장을 공직에 앉혔다고 판단했다. 코이카 측은 "김 이사장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거취 문제는 외교부와 협의 중"이라며 "당장 그만두면 조직 운영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용퇴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외교가 소식통은 “김 이사장도 곧 공식 사직 의사를 밝힐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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