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에 뿔난 3040 부모들 나섰다 … 회원 4만 ‘미대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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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범시민미세먼지대책촉구위원회 집회에 참가한 회원들이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미대촉]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범시민미세먼지대책촉구위원회 집회에 참가한 회원들이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미대촉]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시민 500여 명이 모여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손에는 ‘중국발 발암먼지 해결 촉구’ ‘미세먼지 측정과 예보의 정확성 개선’ 등의 글이 적힌 색지도 들렸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보다 더 숨 쉬기 힘든 세상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며 자녀와 함께 자리를 지키는 부모들도 눈에 띄었다.

80%가 환경운동 경력 없는 여성들 #함께 모여 미세먼지 문제 공부하고 #학교에 공기청정기 설치 의무화 등 #44페이지 분량 ‘정책제안서’ 만들어 #기존 시민단체의 연대 러브콜도 거절 #온라인 규정엔 ‘정치 논쟁은 금지’

이날 집회는 범시민미세먼지대책촉구위원회(미대촉) 주최로 열렸다.

생소한 단체인 미대촉은 지난해 5월 인터넷 카페로 시작했다. 한 대학생이 “미세먼지 대책을 논의해 보자”며 맨땅에 헤딩하듯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 며칠간 신규 가입자가 하루 평균 1000명에 육박한다. 전체 회원은 4만 명을 훌쩍 넘었다.

‘미대촉’ 이끄는 이미옥씨, 네 살 아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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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주도하는 건 사회운동가 출신이 아니다. 자녀를 둔 30~40대 여성들이다. 미대촉을 이끌고 있는 이미옥(38)씨 역시 경기도 안산에서 4세 자녀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다. 2013년 미세먼지가 1급 발암물질이라는 기사를 통해 처음 이 문제를 알게 됐다는 이씨는 “회원의 80%가 30~40대 여성이다. 나 역시 특별히 환경 문제에 관심이 크지 않았고 관련 단체에서 활동을 해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활동가들이 모였지만 활동은 야무지다. ‘미세먼지 대책 특별법’ 발의 과정에도 꾸준히 의견을 냈고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4차례 면담을 했다. 그 밖에도 3차례에 걸친 집회와 각종 토론회, 서명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엄마들이 주로 활동하다 보니 국회 간담회나 집회를 하러 갈 때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다닌다.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44페이지짜리 ‘정책제안서’를 만들었다. ▶어린이집·학교에 공기청정기·환기설비 설치 의무화 ▶미세먼지 기준치를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수준으로 강화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 등이다.

절기상 ‘날이 풀리고 화창해진다’는 청명(淸明)이었던 지난 4일 오전 상공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이 미세먼지로 인해 뿌옇게 보였다. [뉴시스]

절기상 ‘날이 풀리고 화창해진다’는 청명(淸明)이었던 지난 4일 오전 상공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이 미세먼지로 인해 뿌옇게 보였다. [뉴시스]

미대촉의 자발적 활동이 두각을 드러내자 기존 시민단체들은 “연대하자”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미대촉은 이를 거절했다. “미세먼지에 대한 절실함의 정도가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의견 차가 결정적이었다.

이미옥씨는 “기자회견 내용을 봤는데 국내 문제를 얘기하고 국외 문제는 언급조차 없어 어렵겠다 생각했다. 우리도 외교적으로 힘들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중국의 속국도 아닌데 정부가 노력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골적으로 정치색을 드러내는 건 단체 규정을 통해 제한한다. 지난해 12월에 만든 운영규칙에는 ‘정치적 비난, 정치적 목적의 게시물 반복 게재’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씨는 “정치 논쟁으로 비화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하니까 미세먼지 문제는 정작 뒤로 가 버리더라. 미세먼지 문제 대책에 소극적인 정치인을 비판하는 건 좋지만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더라는 식의 의견은 자제해 달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건 아니다. 미세먼지 대책 마련은 결국 정치를 통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정치권에 의견을 전달하는 데는 열심이다. 정책제안서를 일부 대선 후보에게 전달했다. 미대촉 운영진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정치권이 관심을 보이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 2일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

이씨는 “우리 회원들은 미세먼지와 관련해 공약을 내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뽑겠다고 한다. 소속과 관계없이 미세먼지 문제에 신경 쓰고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정치인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미세먼지 대응정책 촉구 움직임과 함께 시민들 사이에는 미세먼지를 조금이라도 없앨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많다. 최근에는 공기정화식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온라인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틸란드시아 등 공기정화식물의 판매량은 올 들어 지난해(1∼3월 기준)보다 29% 증가했다.

공기정화식물, 실내 미세먼지 26% 더 없애

2004년부터 공기정화식물을 연구해 온 김광진 농촌진흥청 도시농업과 연구관은 “효과는 확실히 있다”고 말했다.

1㎥ 크기의 방을 기준으로 한 곳엔 수염틸란드시아 화분 3개를 두고 한 곳은 비워 둔 뒤 미세먼지와 화학 구성이 같은 시료를 날린 다음 4시간 후 결과를 봤더니 화분이 있는 방에선 시료가 70% 이상, 그렇지 않은 방에선 44%만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잎이 있는 모든 식물이 공기정화 능력을 갖고 있다”며 “잎이 넓은 활엽수보다 좁고 촘촘한 침엽수가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더 좋다”고 설명했다.

실험 결과 흙에 심지 않는 식물로는 수염틸란드시아가 미세먼지 제거에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화분에 심는 식물로는 ▶아이비 ▶보스턴고사리 ▶스킨답서스 ▶넉줄고사리 등 고사릿과 식물을 추천했다.

한영익·김나한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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