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이스피싱, 2030 미혼여성 집중 공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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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서울 용산구에 사는 김수진(가명)씨는 지난 2월 16일 낯선 남성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김씨에게 “범죄자가 김씨 명의를 도용해 돈을 빼가려고 하니 계좌에 있는 돈을 전부 인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경험 부족해 당하기 쉬워 #피해 금액 남성보다 10배 많아 #사기범에 돈 직접 주면 환급 안 돼

다급한 목소리였다. 김씨는 당황한 나머지 계좌에 있는 돈을 전부 뺀 뒤, 이 남성이 알려준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전부 맡겼다.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남성은 돈을 받기 위해 김씨를 찾아 왔다. 현금을 넘긴 김씨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악몽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전화를 걸어온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금감원 직원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전화 한 통에 김씨는 애지중지 모은 돈을 전부 인출해 범죄자에게 건넸다.

20~30대 여성을 노린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월 9억7600만원 수준이던 20~30대 여성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지난해 12월 34억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해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 중 20~30대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74%(2152건)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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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금액은 175억원에 달한다. 20~30대 남성의 피해 금액이 19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0배 가까이 큰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20~30대 여성의 피해 금액 대부분은 결혼자금이나 목돈 등 오랜 시간 모아온 돈이었다. 피해 여성들이 직접 돈을 인출해 검사 등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현금을 건넨 경우가 많았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특별법에 따르면 현금 형태로 사기범에게 직접 돈을 전달한 경우에는 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피해를 입어도 금융당국이나 수사기관에서 구제해 줄 방법이 없다. 금융감독원은 20~30대 여성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로 사회 초년생이거나 사회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준법의식이 강한 여성의 경우 사법기관 등의 권위를 내세운 요청에 쉽게 순응한다는 점도 있다. 실제 보이스피싱 조직원 대부분은 사건번호나 명의도용 상황 등을 비롯해 전문용어를 구사하며 20~30대 여성들에게 접근한다.

또 여성의 경우 현장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라는 점을 알더라도 범죄자들에게 물리적으로 제압되기 쉽기 때문에 사기범들의 주된 ‘범행 타깃’이 된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화로 정부기관이라며 자금이체나 현금 전달을 요구하면 100% 보이스피싱이라고 보면 된다”며 “전화를 끊거나 경찰, 금감원(국번없이 1332) 등에 신고하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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