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잃은 대학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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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을축제가 한창인 서울대캠퍼스에서 열린 「관악민국 모의국회」.
대통령선거의 열기를 반영하듯 온통 정치풍자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축제행사 중에서도 모의국회는 선거를 앞둔 국내 정치상황을 젊은 학생들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보여 눈길을 끌었다.
국회의장 「권위찬」씨의 개회선언에 이어 등장한 대통령「전투왕」씨-.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보다는 전쟁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고 싶다』는 내용의 「국정연설」을 하자 야당총재 「한표주」씨는 『요즘 정치판을 보면 「한사람의 대통령을 키우기 위해 초여름부터 명동은 그렇게 울었나보다」라는 시구가 생각난다』는 「기조연설」로 응수했다.
이어 정치분야 대정부질의. 야당인 「갑오녹두당」의 반민주의원이 『공정선거 보장위한 대책을 밝히라』고 질의하자 여당인 「을사일미당」의 육이구의원은 『여당이 나쁘다, 나쁘다하면서 왜 기를 쓰고 여당이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꼬아 야유와 웃음. 내무장관 「방망풍」씨는 『학원소요근절을 위해 SDI에 적극참여, 한 대학에서 시위가 있으면 인공위성에서 모든 대학으로 최루탄을 발사하는 동시다발 보복전을 펴겠다』 『고문치사에 대비, 체력에 따른 선택적 고문제를 실시하겠다』고 답변, 또 한 번 폭소가 쏟아졌다.
경제질의에선 「허기진」의원이 농가부채탕감을 촉구하자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 했거늘 나라보고 꿔준 돈까지 받지 말라니 정부는 흙파먹고 살라는 말인가』라고 여당의 「제갈공황」의원은 응수. 「대학생반공의식고취를 위해 모든 대학생들의 비무장지대에서의 1년간 자취생활의무화」 「군부, 군부하는데 군대 갔다오지 않은 남자 어디 있읍니까」 (사운아의원), 「동문MT다, 서클MT다해서 MT전성시대인데 이왕이면 해외 MT(Military Training)도 허용합시다」(주둔해의원). 열띤 공방전이 계속된뒤 사회자인 가열찬씨의 『선거때보자』는 폐회선언으로 국회는 끝났다.
여유와 낭만대신 직설·냉소의 정치회화 풍자 일색의 대학가 축제를 보며 언제나 우리 대학가가 현실정치의 갈등과 회오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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