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2030와글와글

'예쁜 남자' 신드롬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취업 하려면 외모에도 신경을
내면도 알차야만 꽃미남

양 정 승 (28·현대해상 인사팀 사원)

예전에는 어쩌다 한 명 볼까 말까 했던 꽃미남들이 회사 내에서 하나 둘씩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채용 과정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 대졸 공채 진행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다. 면접을 기다리던 남자 지원자 한 명이 나에게 물어볼 게 있다며 말을 걸어왔다. 언뜻 봐도 1m80㎝가 훌쩍 넘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부드러운 인상, 깔끔한 이미지를 가진 이 지원자는 소위 말하는 꽃미남이었다. 그가 불쑥 주머니에서 안경 두 개를 꺼내더니 "면접위원들이 보시기에 뿔테 안경이 나을까요, 무테 안경이 나을까요"라고 묻는 게 아닌가.

사상 최대의 취업난 속에서 치열하게 자기 계발에 나서는 지원자들은 학점 관리뿐 아니라 토익 성적과 외국어 능력 계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만큼 지원자들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자 입장에서는 반듯한 외모와 깔끔한 이미지로 좋은 인상과 자신감 있는 모습을 면접관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만큼 지원자들은 자기 계발과 자기 관리의 의미를 단지 내적인 실력 배양이나 경험 축적에만 두지 않고 외모나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까지 감안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면접관들도 실력만으로 지원자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특히 고객을 상대하는 비중이 큰 서비스 업종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부드러운 인상이나 편안한 이미지를 주는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할 때도 외모나 이미지 등을 관리하는 것은 고객 상대 등 회사 생활에 있어 일정 부분 필요하다.

업체서 남성의 신체 상품화 … 외모만 중시하는 풍토 조성

이 수 근 (37·한솔건설 자재과 과장)

최근의 경향은 소비 촉진을 위한 마케팅 전략의 결과물인 만큼 이러한 경향이 정답이며 이를 따라하지 않는다고 시대에 뒤지는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본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여성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산업사회에서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듯 남성의 신체를 상품화하는 경향을 남성의 자기표현으로 잘못 인식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의상과 도발적인 화장으로 광고 지면을 장식한 반라의 여인들을 보면서 여성단체가 성의 상품화를 개탄하며 이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

TV를 켜거나 잡지를 펴면 이제 그 대상이 남성으로 바뀌었을 뿐 대상을 보여주는 양상은 동일하다. 여성에게 적용될 때는 성의 상품화였는데 남성에게 적용될 때는 내면의 자유로운 표출이며 자신을 '관리'하는 행위가 되는가.

다양한 남성상의 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가꾸는 것의 진정한 의미나 방법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으면서 옷은 이만큼은 입어야 하고, 피부 관리도 이 정도는 해야 현대를 제대로 살아가는 남자라고 할 수 있다는 식의 매체와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은 남성 또한 소비 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전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원만한 사회생활과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일정 수준의 관리는 필요하다. 문제는 현재의 사회적 경향이 과시적이며 허영에 들뜬 외모 가꾸기만을 조장한다는 데 있다. 건강한 몸을 가꾸는 게 신체와 정신에 얼마나 득이 되는지 알리기보다는 '몸짱'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를 통해 부러움을 조장, 제대로 된 운동이 아닌 근육 크기만을 키우는 기형적인 운동 형태가 만연하고 있다.

또한 왜 피부를 관리해야 하는지, 위생과 건강의 측면에서 관리를 소홀히 했을 때의 문제점을 말하기에 앞서 여자보다 더 고운 피부가 '인기'를 끌고 있음을 내세워 컬러로션을 팔려고 하는 제조업체의 전략은 건강한 자기 관리 문화가 아닌 그저 '겉'만을 중시하는 문화를 퍼뜨린다.

남성 본연의 모습을 잊게 할 정도로 지나치게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개인의 정체성을 성이라는 틀에 맞춰 억누르지 않아야 하지만 이는 정체성 혼란을 조장할 뿐이다. 사회가 진화함에 따라 양성의 장점은 취해야겠지만 남성의 일방적인 여성화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어색함만을 낳을 뿐이다.

'왕의 남자' 이준기 메이크업 … 여자 메이크업과 다를 것 없어

이 은 지 (32·i웰컴 기획팀 선임대리)

나는 '꽃미남'을 좋아한다. 학창시절 일본 만화를 즐겨본 영향도 있겠지만 예쁘고 보기 좋은 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꽃미남'만을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 남자친구는 '꽃미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여드름 치료를 위해 피부과도 다니고 피부에 좋은 화장품도 가려 쓸 정도로 '신경'을 쓴다. 그의 매력은 꽃미남을 닮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꾸려 한다는 데 있다.

주변엔 자신을 가꾸는 데 너무 소홀한 남자가 많다. 민망할 정도로 후줄근하게 하고 다니는 남자와는 사귀고 싶지도, 같이 일하고 싶지도 않다. 뻣뻣하게 뭉친 머리카락에서 빨랫비누 냄새가 나는 남자와 정돈된 머리에서 은은한 샴푸 향을 풍기는 남자 중 한 사람을 고르라면 백이면 백 모두 후자를 택할 것이다.

최근의 '크로스섹슈얼'을 보면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폭이 한층 더 넓어진 것 같아 기분 좋다. '하리수'의 등장으로 '트랜스섹슈얼'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면, 이준기로 대표되는 크로스섹슈얼은 남자의 자기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엔 크로스섹슈얼 동호회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제약받던 남성들이 패션 감각을 마음껏 펼칠 기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크로스섹슈얼은 사실 남성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는 한 단면일 뿐이다. 낮에는 직장인이지만 밤에는 재즈 뮤지션으로 꿈을 펼치는 주인공이 나오는 광고처럼 자신의 참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것은 남녀를 불문한 본성이라고 본다. 눈썹을 다듬고 가볍게 메이크업까지 하고 나오는 이준기의 캐릭터와 밖에 나설 때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여성들이 메이크업을 하는 동기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남자들은 그동안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패션계의 대부인 앙드레 김은 여성스럽고 다소 과장된 행동으로 남자들의 웃음거리로 치부돼 왔다. 패션.미용.예술.연예계에서 양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남자들도 희화화돼 온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각각의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남성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두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모습 찾는 건 당연
다양한 남성상 인정해야

남 용 우 (32·태평양 뷰티 트렌드팀 과장)

조선시대 500년간의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와 국가 변혁기에 국민 정체성에 집중적인 영향을 미친 군사문화는 우리나라 남성들에게 '남자다운 남자'라는 혹독한 스테레오 타입을 강요해 왔다. 이 때문에 감성을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예술인이나 연예인 등은 '딴따라'로 비하됐고, 또래 남성다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은 '왕따'가 되거나 두고두고 '놀림감'이 돼야만 했다. 하지만 이렇게 경직된 우리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많은 남성이 화장품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 화장품 브랜드는 여성 제품 못지않은 남성 제품들을 갖춰 놓고 남자들에게 그루밍(외모 관리)의 필요함을 부르짖고 있다.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표출하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 남성에게 기본적으로 공유되는 정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크로스섹슈얼의 전형인 배우 이준기나 최근 '장효리'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된 가수 장우혁의 모습을 보고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마초'라 하더라도, 타인에게 호감을 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단정한 복색과 두발 정돈, 피부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단 미디어에서 '외모'를 가꾸는 측면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외모 중심주의'를 조장하는 건 경계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조인성이나 다니엘 헤니, 혹은 이준기와 같아질 수는 없으며 개인별로 자신에게 맞는 모습을 찾아나가고 이를 가꾸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기 자신에게 소홀하고 오로지 사회적 잣대에만 충실해야 했던 우리나라 남성들이 숨겨 왔던, 혹은 제대로 인지하려 하지도 않았던 자신에 대한 관심과 성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자신에 대한 투자는 계속돼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트렌드 자체를 미디어와 관련 업계에서 조장하는 것으로 간주해 상술로서 백안시하기도 한다. 어느 수준까지는 상업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남자들이 스스로를 가꾸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한 투자이자 자기만족의 차원으로 여겨야 한다. '그루밍(grooming)'이라는 단어가 마부(groom)가 말(馬)을 빗질하며 잘 관리하는 행위에서 유래된 것처럼 남성들의 그루밍은 자기 자신을 잘 다듬고 준비하는 행위인 것이다.

정리=조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