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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정당」을 보며|정당의 뿌리는 정책에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통령선거를 한달 남짓 앞두고 정계 재편바람으로 신민당과 국민당이 사실상 와해되었다. 신민당은 이민우총재의 정계 은퇴선언으로 선장을 잃었고, 국민당도 소속의원 9명이 탈당해 공동화되었다.
5공화국 출범후의 인위적인 3당 체제가 종언을 고하고 4명의대권주자 중심의 정계 판도개편을 보면서 우리는 새삼 한국정당정치의 본질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갖게 된다.
본시 정당이란 정치적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만든 정치집단이다. 정당은 한나라가 발전해 나가야할 방향을 모색, 제시하고 국민의 지지를 모아 나가는 민주정치의 산실이다. 민주정치를 정당정치라고 부르는 소이인 것이다.
결국 국민의 정부선택권이란 정당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민이 신뢰하면서 선택할만한 정당이 없다면 이는 국민의 정부선택권을 행사할 기회마저 갖지 못함을 의미한다.
여야합의에 의해 새 헌법이 마련되었지만 그것만으로 이 땅의 정치발전이 보장될 수 없다고 보는 것도 정치를 맡아할 정당다운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40년 우리의 정당사는 권력투쟁 내지 감투획득을 위해 형성된 정치엘리트들의 파벌싸움으로 일관되다시피했다. 정권이 수립되면 그 정권의 지지기반을 마련하고 정권을 관리하기 위한 정당을 형성하고, 여기에서 소외되거나 탈락한 세력이 결집해서 야당을 형성하곤 했다. 1공화국에서 5공화국까지 이러한 패턴은 되풀이되었다.
권위주의적 정부밑에서 여당은 근대적 민주정당의 기능보다는 하향식 지시만이 통용되는 들러리로 전락했고, 야당은 「만년야당」 의한계를 벗어나지 못한채 이합집산을 거듭해왔다.
그러다보니 정당정치가 사회적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에 편승해서 이를 오히려 조장하고 심화시킨 결과마저 빚었다.
선거때만 출현했다가 없어지는「뜬구름 정당」이 이름조차 기억할수없을 정도로 많았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집권당이 하루 아침에 풍비박산이 되곤 했던 것도 따지고보면 여야를 불문, 모든 정당이 대중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는 야당의 집권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하여 그 기세는 자못 드높다. 그러나 각 정당은 구태의연하게 이념이나 정책이 아니라 대권주자들의 인기도나 지방색을 기준으로 운용되고 경쟁하는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있다.
유권자들의 의식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국민 여론조사의 반응을 보면 정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표를 찍겠다는 사람이 더많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각 정당이 세력확장을 위해 어제의 기피인물마저 동지로 받아들이는 작태를 보고 실망하거나 개탄할것만도 없다. 어차피 우리의 정치수준이 거기밖에 이르지 못했다는 냉정한 현실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서둘러야 할과제는 오늘의 진통이 본격적 정당정치의 정지작업이 되도록 하는일이다. 이를 위해 각 당은 실현 가능성도 없는 공약만 남발할게 아니라 당이념을 정비, 민주정당의 면모를 서둘러 갖추어야 하며, 국민들도 이념과 정책을 통해 지지정당을 선택, 정당의 체질이 근대화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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