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인선 소장판사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대법원의 대법관 제청 후보 추천 내용에 반발해 12일 박재승(朴在承)대한변호사협회 회장과 강금실(康錦實)법무부 장관이 대법관 후보 제청 자문위원직을 사퇴한 데 이어 13일 소장 판사들이 집단 반발하고 부장판사가 사표를 내는 등 신임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보.혁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대법원장이 다음주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더라도 대통령이 제청을 받지 않거나, 접수하더라도 서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회에 임명 동의안을 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입장 표명은 연공서열에 따라 대법관을 인선해 온 사법부의 관행을 바꾸겠다는 개혁 구상을 이번에 실천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돼 사법부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후보 임명 제청은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이라며 예정대로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청와대와 사법부 간 충돌이 예상된다.

서울지법 북부지원 이용구 판사 등 서울지역 단독판사 3명은 법원 내부 통신망에서 "대법관 인선 과정이 국민을 좌절케 하고 있다"며 "대법원장에게 의견서를 올리고자 하니 동의하는 법관들은 답변 e-메일을 보내 달라"며 연서(連署) 작업에 들어갔다. 13일 밤 현재 1백명 가까이 동참 e-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법 박시환 부장판사는 "새 대법관 선임 내용이 종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고 사법부의 변신을 기다려온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康장관도 자문위원직 사퇴서에서 "대법원이 관행대로 후보를 제청하려는 마당에 더 이상 참여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대법원장이 임명제청권을 갖고 있지만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라고 강조한 뒤 "대통령도 사법부 의견을 존중하겠지만 국민 여망이나 법원 내부 의견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법관인 이강국(李康國)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 3명은 역량과 인품.도덕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 결정한 것으로 안다"며 "예정대로 다음주 초 최종 후보를 대통령에게 제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희동 포천군법원 판사는 내부 통신망에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대법원장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을 하고 대통령은 국회에 임명 동의안을 제출,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을 거친 뒤 최종 임명토록 돼 있다.

강민석.김현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