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밧줄 묶인채 독방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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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도재승서기관이 감금생활을 한곳은 아침저녁으로 비행기 이·착륙때의 굉음이 가깝게 들리는 베이루트 시내였으며 이곳 저곳으로 거소가 옮겨지기는 했으나 대부분 창문이 하나도 없는 아파트형태의 건물·독방에서 지냈다고 도서기관과 지난 3일간을 함께 보낸 측근들이 전했다.
도서기관이 지난달 30일 제네바에 도착한 이후 자신의 납치와 억류생활에 대해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이 납치된 후 끌려간 곳은 그리 빠르지 않은 자동차 속도로 십여분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나 납치범들이 자신의 눈을 가려 자동차 트렁크속에 가두었기 때문에 정확한 거리나 방향등은 알 수 없었고 아침저녁으로 여러대의 항공기가 번갈아 이·착륙할 때 내는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렸다고 말했다.
도서기관의 이같은 기억으로 미루어 그가 납치된 후 끌려간 장소는 베이루트주재 한국대사관 뒤쪽의 약1km거리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주변의 헤즈볼라 세력지배하의 아파트로 보이며 이는 인근의 소련·중공대사관과 삼각지점을 이루는 곳이다.
도서기관이 처음 감금된 곳 주변에서는 지난해 아말파와 헤즈볼라파간의 소위캠프전쟁이 벌어져 이 때문에 감금장소를 옮겨야 했던 것 같고 때로는 납치범들이 추적 받는것을 피하기 위해 야간을 이용, 의도적으로 인질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으로 보였으나 위험한 변두리지역보다 비교적 안전한 베이루트 시내중심부를 맴도는 것 같았다.
범인들은 감금장소를 옮길때와 하루 한차례씩의 용변시간을 줄때도 항상 도서기관의 눈을 두껍고 검은 천으로 가려 자신이 햇볕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하루 단 한번씩 지급되는 식사배급 때 뿐이었다고 한다.
나머지 시간을 도서기관은 아무런 장식이나 시설도 없이 매트리스 하나와 희미한 백열등 전구 한개가 켜져있는 방에서 밤과 낮을 모른 채 지냈다.
도서기관은 큰 돈벌이가 되는 상품처럼 취급됐기 때문에 납치당시 외에는 얻어맞거나 하지 않았고 몸이 아프다고 하면 약도 갖다주었으나 그가 탈출하는 것에 대비, 자신의 한쪽 발목이 항상 굵은 밧줄에 묶여 있었다고 한다.
납치범들이 가끔 복도같은 곳에서 자기네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무슨 소리인지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다른 외국인인질과 만날 기회도 없었다.
용변 시간과 급식시간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억류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명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납치범들이 대부분 그리 유창하지 못한 영어로 도서기관에게 지시를 했고, 가끔 다른 사람에게도 큰 소리로 비슷한 지시를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기관이 오랜 감금생활을 하는 동안 인질에 대한 석방교섭이 진행되거나 석방시기가 가까와지면 인질에 대한 대우가 좋아지고 좀 더 나은 아파트로 옮겨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도서기관 자신도 그런 대열에 끼였고 그럴수록 석방이 가까워 진다는 기대감에 더욱 잠을 이룰수가 없었으며 석방 1주일을 앞두고 풀어주겠다는 통보를 받고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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