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불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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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이 홈그라운드에서 시리아를 꺾고 귀중한 승점 3점을 따냈다. 벼랑 끝에 몰렸던 슈틸리케 감독도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으론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시리아와의 경기 도중 팔짱을 끼고 그라운드를 지켜보는 슈틸리케 감독(오른쪽). [뉴시스]

한국이 홈그라운드에서 시리아를 꺾고 귀중한 승점 3점을 따냈다. 벼랑 끝에 몰렸던 슈틸리케 감독도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으론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시리아와의 경기 도중 팔짱을 끼고 그라운드를 지켜보는 슈틸리케 감독(오른쪽). [뉴시스]

벼랑 끝에 몰렸던 울리 슈틸리케(63·독일) 축구대표팀 감독.

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 #한국 1 - 0 시리아 #홍정호 결승골 겨우 지키며 진땀승 #달라진 슈틸리케 세밀함은 떨어져 #남은 3경기 중 원정 2경기 부담 #“감독 바꿔야” 비난 여론 여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5위 시리아를 1-0으로 꺾고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승점 3점을 따냈다고 만족하기엔 경기 내용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FIFA랭킹 40위)은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시리아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7차전에서 1-0으로 진땀승을 거뒀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4승1무2패(승점13)를 기록하면서 힘겹게 2위를 지켰다. 시리아는 2승2무3패(승점8)에 그쳤다. 같은 조 이란(5승2무 승점17)은 이날 중국(1승2무4패 승점5)을 1-0으로 꺾고 1위를 달렸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선 각 조 1, 2위가 본선에 직행한다.

전반 4분 만에 터진 홍정호(28·장쑤)의 골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국은 전반 4분 만에 리드를 잡았지만 나머지 86분을 답답한 플레이로 일관했다. 후반 추가시간 시리아 알 카팁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온 것은 행운이었다. 축구팬들은 시리아전 승리 이후에도 “마치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답답한 기분이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축구팬들은 또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다” “이런 경기력으론 본선에 나가도 3전 전패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육군 소장 출신인 유대우 전 축구협회 부회장은 “시리아전은 퇴로가 없는 전투와 같다”고 말했다. 한 대표팀 선수의 에이전트는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은 중국과의 6차전에서 0-1로 진 뒤 분해서 눈물을 흘렸다. 시리아전 패배는 곧 한국축구의 몰락을 의미하기에 선수들은 비장한 각오로 나섰다”고 귀띔했다. 내전으로 인해 사망자가 30만명이 넘는 시리아 선수들도 비장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이날 경기는 양국 모두에게 중요한 경기였다.

그동안 이정협(부산)을 원톱 공격수로 내세우며 4-2-3-1 포메이션을 고수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이날 경기에선 21세의 공격수 황희찬(잘츠부르크)를 내세웠다. 또 전반전에 4-2-3-1, 4-1-4-1, 3-4-3 등 3가지 포메이션을 번갈아 테스트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이 최후방 스리백 ‘3’ 중 가운데 자리에 리베로(libero)로 나서기도했다.

전반 4분 만에 선취골이 터지면서 한국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다. 그러나 한국은 선취골을 넣은 뒤 오히려 시리아에게 밀렸다. 전반 30분엔 시리아의 알 쉬블리 알라가 문전 노마크 찬스에서 날린 슈팅이 크로스바를 넘기는 아찔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후반 26분에는 알 카티브 피라스가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대포알 같은 슛을 날렸지만 골키퍼 권순태가 얼굴로 막아냈다. 이날 한국과 시리아의 슈팅 수는 13대10, 유효슈팅은 6대4였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은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전반에만 3가지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으니 세밀함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나사가 풀렸다고 할까. 초반에 골을 넣은 다음 더욱 강하게 물어붙여야 했는데 패스가 끊기고, 수비 실수가 빈번하게 나왔다”고 지적했다.

2014년 9월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은 슈틸리케는 이제 임기 2년7개월을 넘기며 역대 최장수 감독이 됐다. 하지만 최종예선에선 졸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3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이 가운데 2게임이 원정경기다. 6월13일 카타르와 원정 8차전, 9월5일엔 우즈베키스탄과 원정 10차전을 치른다. 8월31일엔 조 1위 이란과 홈에서 9차전을 갖는다. 한국은 최근 이란과 4차례 맞붙어 4전 전패다. 김환 JTBC 해설위원은 “결과를 떠나 중국과 시리아를 상대로 이렇게 저조한 경기력을 보인 건 무척 실망스럽다. 남은 3경기의 상대는 훨씬 강하다. 더구나 원정경기가 2게임이나 된다”며 “전략도 단순하고, 선수 장악력도 떨어지는 슈틸리케 감독이 남은 기간 경기력을 끌어올리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사실상 시리아에 판정패나 마찬가지다. 슈틸리케를 계속 중용하는 건 위험해 보인다. 남은 3경기 상대는 훨씬 강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수용인원(6만500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만352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싸늘한 팬심을 반영하는 듯 했다.

감독의 말

◆울리 슈틸리케 한국 감독

“1-0으로 이겼지만 매우 어려운 경기였다. 전반 4분 만에 선제골을 넣어 쉽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패스 연결을 포함해 원하는 플레이가 살아나지 않았다. 후반전엔 투지와 경기력이 조금씩 살아났지만 마지막 순간에 위기를 맞았다. 행운이 따른 승리였다. 중요한 건 승점 3점을 따내서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자력 진출할 수 있는 순위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6월 카타르전을 앞두고 비교적 오랫동안 대표팀 소집훈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아이만 알하킴

아이만 알하킴

◆아이만 알하킴 시리아 감독

“어려운 상황에서도 축구로 시리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여기에 왔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결정력이 없었다. 기회가 많았는데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한국의 경기력은 훌륭했지만 시리아도 밀리지 않았다. 내용적인 면에선 비긴 경기였다고 생각한다 .”

박린·김지한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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