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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 웃을 일 없다고요? 살맛 넘치는 ‘열정도’로 오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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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평균 나이 26.5세의 청년장사꾼 멤버들. 스스로를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청춘’이라 부르는 이들은 열정과 성실함으로 서울 용산구의 낙후된 인쇄소 골목을 활력 넘치는 열정도로 바꾼 주인공들이다. [사진 김경록 기자]

평균 나이 26.5세의 청년장사꾼 멤버들. 스스로를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청춘’이라 부르는 이들은 열정과 성실함으로 서울 용산구의 낙후된 인쇄소 골목을 활력 넘치는 열정도로 바꾼 주인공들이다. [사진 김경록 기자]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청년 장사꾼들의 자력갱생 일터 #평균 26.5세, 돈 없고 빽 없는 30명 #감자집·주꾸미집·고깃집 등 6곳 #버려진 인쇄소 골목에 가게 열어 #“지쳐 있지~말고~ 힘내세요” #구호 외친 뒤 인증샷 찍고 영업 시작 #“고기 나왔어요” 서빙 때도 쩌렁쩌렁

서울 용산구의 한 골목길에 새겨진 문구다. ‘열정도(島)’라 이름 붙은 이 낡은 길에는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주꾸미 가게 테이블을 닦는 교육생도, 주방에서 고기를 손질하는 점장도, 감자튀김을 집어먹는 손님들도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3년 전 보잘것없던 인쇄소 골목에 평균 나이 26.5세의 청년 장사꾼들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스스로를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청춘’이라 부르는 이들은 정직함과 열정을 무기로 ‘헬조선’에서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었다.

2014년 개업 … 한 달 매출 3000여만원

지난 23일 오후 2시 열정도 거리에서 김윤규(31) 대표를 만났다. 인쇄소 골목을 열정도로 재탄생시킨 주인공이다. 그가 처음 둥지를 튼 곳은 경복궁 금천교시장. 맥주와 감자를 팔았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조리법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장사해 온 주변 상인들을 맛으로는 당해낼 수 없었다. 웃음과 에너지를 팔았다. ‘감자 살래, 나랑 살래’ ‘잘생겨서 죄송합니다’ 등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우렁찬 목소리로 손님들을 모았다. 사람과 돈이 모였다. ‘열정’과 ‘성실함’이라는 노하우를 배웠다.

김 대표의 철학은 ‘자력갱생’이다. 철학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청춘 30여 명이 모여 ‘청년장사꾼’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조금 더 넓은 공간에 함께 6개의 가게를 열었다. 그것이 지금의 열정도가 된 것이다.

장사를 배우기 위해 제주도에서 올라왔다는 오세웅(오른쪽)·세철 형제.

장사를 배우기 위해 제주도에서 올라왔다는 오세웅(오른쪽)·세철 형제.

용산구 원효로 일대를 열정도 부지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금천교시장과 마찬가지로 임대료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열정도가 들어오기 전 이 일대는 버려진 섬과 같았다. 좌우로 재개발이 진행되며 고급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섰지만 열정도 지역은 껑충 뛰어버린 땅값 탓에 재개발 계획이 도중에 멈춰버렸다. 기존에 자리하던 인쇄소들은 파주 출판단지로 자리를 옮겨갔다. 텅빈 골목길은 임대료가 저렴했다. 김 대표는 “돈도 없고 빽도 없으니 메인 상권으로는 진입이 불가능했다. 대신 낙후된 이 거리를 우리들이 스스로 부흥시켜 보겠노라는 다짐과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열정도는 큰 성공을 거뒀다. ‘청년장사꾼’이 운영하는 감자집·주꾸미집·고깃집 등 가게 6곳의 평균 월매출은 3000여만원. 이제는 주변 가게들도 ‘열정도’ 스티커를 가게 문 앞에 붙이고 홍보할 정도다. 자영업자 숫자가 650만 명을 넘고 이들 중 절반이 3년 내 문을 닫는 시대. ‘성실함’과 ‘열정’만으로 성공했다는 이들의 말이 허언은 아닐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고깃집 주방에서 설거지 보조를 하며 열정도의 밤을 함께 보냈다.

“지쳐 있지”(선창)/ “말고”(후창)/ “힘들어 하지”/ “말고”/ “열정 넘치게”/ “힘내세요”.

오후 4시 열정도의 밤은 시작된다. 앳된 얼굴의 청춘 30여 명이 치킨집에 모여 구호를 외쳤다. 스마트폰을 들고 ‘출근 인증샷’을 남긴 뒤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고깃집·주꾸미집·감자집 등 각자의 일터로 흩어졌다.

“장사는 무엇보다 몸이 힘들다. 우리가 외치는 구호는 일종의 주문이다. 우리가 신나야 일이 재밌고 그래야 손님들도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장사 경력 3년의 김수진(27·여)씨가 일터로 향하며 말했다. 매장당 배치되는 인원은 5명 남짓. 홀 담당, 입구 담당, 주방 담당 등 역할을 나누고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오후 6시가 되자 ‘열정도 고깃집’에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홀 담당 직원이 외치는 “안녕하세요 열정도!”에 맞춰 다함께 “고깃집”을 외친다. 주문한 고기 하나도 그냥 가져다주는 법이 없다. 초벌구이를 마친 삼겹살을 철판에 올리며 “삼겹살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라며 우렁차게 말한다. 100㎡(30평) 남짓한 공간이 쩌렁쩌렁 울렸다.

“형님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열정도의 대표 메뉴인 맥주와 감자튀김은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열정도의 대표 메뉴인맥주와 감자튀김은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앞치마를 두르고 접시가 가득 쌓인 싱크대 앞에 서자 고기를 손질하던 오세철(26)씨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앳된 얼굴이지만 칼 다루는 솜씨는 예사롭지 않았다. 손질이 까다롭다는 갈매기살도 칼질 몇 번으로 금세 발라냈다. 그는 이 가게의 최연소 점장이다. 고향이 제주도인 오씨는 “청년장사꾼에서 장사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며 1년 전 친형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의 꿈은 ‘주인과 손님 모두 행복한 음식점’을 차리는 것이다. 그는 “고기는 단순히 매개체일 뿐이다. 내가 손질한 고기를 손님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보람 있다”고 말했다. 오픈형 주방에서 일하는 오씨의 눈은 늘 테이블을 향해 있었다. 단골손님이 방문하면 “형님 오늘도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계란찜은 서비스”라며 살갑게 말을 건네기도 했다.

“열심히 사는 청년들 보면 자극받아요”

손님들도 금세 분위기에 녹아든다. 퇴근길에 가게를 찾았다는 김현성(33)씨는 “참 웃을 일 없는 세상이지만 이곳만큼은 늘 즐겁다. 나보다 대여섯 살 어린 동생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청년장사꾼’은 열린 조직이다. 현장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최대한 많은 이와 공유하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이들이 운영하는 ‘2주 교육 프로그램’은 99회째를 맞았다. 교육생들은 2주간 공동으로 생활하며 매장에서 실전 경험을 쌓는다. 재무제표 관리, 상표권 등록 방법 등 기초적인 장사 지식도 함께 배운다.

가게를 열기 전 노하우만을 배우러 교육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다. 김 대표는 “교육은 곧 우리의 철학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함께 일하지 않더라도 여기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활력 넘치는 가게를 차린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99회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김모(31)씨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올해 안에 고향인 부산에서 ‘바’를 차리는 게 목표다. 김씨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무엇보다 태도에 대해 많이 배웠다. 새로운 도전이 불안하지만 성실하게 임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민관·여성국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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