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부추기면 표주지말자|성병욱<편집부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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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화를 달가와하지 않던 사람들이 대통령직선제 반대 이유로 내걸었던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영호남간 지역감정이 격화될 조짐이고 유세장 안팎의 폭언·폭력사태도 심상치 않다. 국민의 정치의사 형성에 기여해야할 정당은 특정인의 이해관계에 따른 세포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이 앞서 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욕설을 퍼붓는 풍조가 번져간다.
불행히도 사회에 통합보다 분열, 화해보다 대립이 심화되어가는 느낌이다. 존재하는 분열·대립요인을 없는 것처럼 덮어둘 필요는 없다. 당장은 괴롭고 아프더라도 문제는 드러내는게 좋다. 드러내놓고 치유하는 노력을 해야 참다운 화해와 통합의 길이 열린다.
그러나 지금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문제를 드러내는 정도를 넘는다. 오히려 감정대립을 격화시켜 분열을 깊게한다. 이러다가 과연 선거운동이나마 제대로 할수 있을지, 누가 집권을 하든 나라를 민주적으로 이끌어 갈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4주자들은 한결같이 말로는 지역감정의 폐해를 논하고 그 해소를 다짐한다. 그러나 막상 그들의 선거전략 기본틀에는 지역간 대립이 전제되어 있다.그러니 급하면 여기에 불을 붙이는 것쯤은 선거열에 사로잡힌 사람에겐 대수롭지 않은일이 된다.
71년 대통령선거때 집권측은 여야후보의 대결구도를 영호남 대결로 짜려한 흔적이 있다. 결과가 그 방향으로 되어 그때의 대통령선거는 우리 역사상 영호남 지역감정을 격화시킨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한때 집권쪽에선 야당후보가 단일화될 경우 김영삼씨보다 김대중씨쪽이 더 해볼만하다는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거가 영호남 대결양상을 띠면 인구가 더 많은 영남족에 불리하지 않다는 나름의 정치산술 때문일 것이다.
지역감정 악화를 막기 위해서란 이유로 같은 경상도출신의 노태우-김영삼대결이 바람직하다던 김영삼계의 발상 또한 타지역 사람들로선 기가 찬 얘기였다. 타지역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몰라도 경상도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해서야 오히려 지역감정에 기름을 붓는꼴일수밖에 없었다.
김대중계에서 국민의 뜻을 알아본다면서 최초의 대규모 인파동원을 광주에서 한것도 의도와 이유는 여하간에 타지역의 호승심을 자극한게 사실이다.
이번 야당의 분열은 기본적으로 두김씨의 오랜 대권집착의 산물이지만 주자들의 지역대림을 기초로한 선거전략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같은 당을 할때에도 영남출신 의원은 모두 상도동계, 호남출신의원은 모두 동교동계였다. 타계보에 들어가서는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할수 없다는 묘한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그것이 양김씨를 따라 이제 두당으로 갈렸으니 가위 「경상도당」「전라도당」이란 얘기가 나올만도 하게됐다. 총선거에서도 상대 지역서 국회의원을 내기가 어려운 형편이라 각각으로선 전국정당으로 기능할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60,70년대에 공화당에 대해 「1인의존 집단」이란 비평이 있었는데 민주화를 한다는 이 마당에도 유감스럽게 민주사회의 정당다운 정당이없어보인다.
역대의 집권당이었던 자유당과 공화당은 1인의존 집단이란 말처럼 1인이 사라지니 정당 또한 사라졌다. 신공화당이 공화당을 재건한다지만 과연 뿌리를 내리게 될지, 특히 JP 없이도 생명력을 지니게 될지 두고볼 일이다. 민정당도 만일재집권에 실패하면 정당으로서 그운명이 어떻게 될까.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않은게 불행히도 사실이다.
그에 비해 과거 한국의 보수야당은 잡초같은 생명력을 지녔었다. 당명과 지도자는 바뀌어도 제1야당의 위치는 꿋꿋이 지켜왔다. 적어도 몇년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정통제1야당」보다 두김씨란 「지도자」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이제는 전통야당은 사라지고 개인의존집단만이 남은듯하다. 2·12총선이후 민한당과 신민당의 붕괴, 민주당의 분열과정을 그밖의 다른 말로는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유력한 후보를 낸 4대정당이 모두 1인의존 집단처럼 되어 있어서는 4주자의 출신지역 희석·완충 역할을 정당에 기대하기는 어렵다. 1인의 영광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당원들의 광범한 정치적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정당이라야 그런 완충 역할이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지금은 약간만 삐끗해도 지역감정이 격발될 위험성이 만재돼 있다. 광주·이리에서의 유세장 공격, 부산에서의 후보숙소공격, 김수로왕릉에서의 폭언등이바로 그 위험신호다.
그 신호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상대 지역에서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과연 할수 있겠는가, 이 상황에서 행한 선거 결과에 승복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이같은 부작용을 무릅쓰고도 대통령은 직선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게 될는지 모른다. 이러한 의문은 민주화 자체에 대한 회의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이런 사태는 결단코 피해야한다.
그러자면 우선 후보들은 물론, 국민 모두의 자제, 신중한 언동과 함께 지역감정을 부추긴 측에는 절대 표를 주지 않는 결연한 국민적 다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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