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프루프'로 5년만에 무대 서는 추상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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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네가 허비해 버린 날들을 햇수로 바꾼다면 흥미로운 숫자가 될꺼다. 1729주. 대단한 숫자지. 12의 세제곱 더하기 1의 세제곱은 1729."(아버지)

"10의 세제곱 더하기 9의 세제곱…이구!"(캐서린)

7일 오후 서울대학로의 한 연습실. 연극'프루프(Proof)'의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다. 캐서린 역을 맡은 배우 추상미가 숫자를 좔좔 외다가 급기야 말끝을 흐린다. 추씨가 "야, 미치겠네"라며 '혀가 꼬이는' 자신을 탓하는 사이 스태프들은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연극 '프루프'의 연습실은 이렇듯 즐겁다. 연극의 명성 그대로 '될 만한' 작품에 몰입하는 건 저절로 흥이 나는 일. 하지만 그 속에도 살얼음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 그 이름값 만큼 부담이 가기 때문이다.

20일부터 서울 정동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 국내 초연되는 '프루프'는 그 면면이 화려하다.

영화'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이기도 한 천재 수학자 존 내시에서 모티브를 따온 섹시한 주제, 토니상.퓰리처상 수상 등 화려한 성적표, 5년만에 정극 무대에 서는 배우 추상미와 '인류 최초의 키스''산소''당나귀들' 등 올해 화제작을 끊임없이 내놓은 연출자 김광보의 조우 등이 그것이다.

'프루프'는 천재 수학자와 그 끼를 물려받은 딸 캐서린에 관한 이야기다. 때는 아버지의 장례식 전날 밤. 캐서린은 아버지의 제자인 할이 가치있는 연구물을 찾기 위해 아버지의 유품을 뒤지는 것을 지켜본다. 할에게 호감을 느낀 캐서린은 뛰어난 수학적 증명이 담긴 노트 한 권을 귀띔해주고 그것이 자신의 연구 결과임을 밝힌다. 주변 사람들이 미심쩍어하자 캐서린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연극에서 캐서린은 누구보다 중요하고 비중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공연 2시간 10분 동안 단 한 장면을 빼고는 캐서린이 계속 무대 위에 선다. 기네스 팰트로는 캐서린 역으로 지난해 5월 런던의 연극 무대에서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캐서린은 천재성과 광기를 함께 지닌 인물이예요. 울고, 떠들고, 웃다가 허탈해하는 광기 어린 여자…. 그래서 더욱 맘에 들어요." 추상미는 KBS 일일극 '노란 손수건'에 출연하느라 바쁜 일정 속에서도 용케 시간을 냈다. 추씨는 "그간 경험해 본 역할 중 가장 힘들다. 하지만 복잡 미묘하고 고통스러운 배역이 욕심 난 만큼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때문일까. 예쁜 옷 대신 연습 전용 트레이닝복으로 단단히 무장(?)한 그녀는 연습에 들어가자 굉장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연출자 김광보씨는 "추상미와 처음 대본 연습을 할 때 깜짝 놀랐다. 스토리도 모른 채 그저 읽기 시작했는데, 귀신 같이 배역에 몰입하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프루프'는 원래 지난 3월쯤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연기된 뒤 8월에 재정비할 때는 추상미.추귀정씨 이외에 장영남(캐서린 더블).전성환.장현성이 새로 가세했다. 오랫 동안 뜸을 들인 만큼, 해외 연극판에서의 유명세 그대로, '프루프'가 화제의 연극으로 자리매김할지 지켜볼 일이다. 9월 28일까지. 02-516-1501.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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