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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30분 시작된 긴 하루 … 점심은 김밥, 저녁엔 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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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분 단위 스케줄로 진행됐다. 21일 오전 9시35분 신문이 시작됐다. 앞서 검찰은 200여 개의 ‘그물망’ 질문과 조사담당자를 정했다. 서울중앙지검 청사 10층 1001호 조사실에선 이번 사건의 주임검사인 한웅재 형사8부장검사와 이원석 특수1부장검사 등 수사팀이 박 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사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조사실 옆 1002호 휴게실에 들렀다. 유영하·정장현 변호사가 동행한 채로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를 만났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 차를 마시며 “진상 규명이 잘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조사 일정도 자세히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포토라인에서 말한 것처럼 “성실히 잘 조사받겠다”고 답했다.

삼성동 자택 이른 새벽 불 커져 #9시15분 출발 전 지지자들 보고 #“어휴, 많이들 오셨네” 혼잣말도 #검찰 도착 뒤 8초간 29자 육성메시지 #검찰, 조사실 옆 휴게실 따로 마련 #피로 감안해 1시간40분 저녁 식사

1001호 옆 부속실에는 응급용 침대와 간이소파 등이 마련됐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대검 중수부의 조사 때처럼 검찰은 조사실 옆에 휴식공간을 준비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12시간 넘게 조사받고 귀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한웅재 부장검사와 배석 검사를 마주 보고 앉았다. 배석 검사는 교대로 조사 내용을 타이핑했다. 검사들은 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며 예우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사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진술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오른편에서 방어 논리와 답변 내용을 조율했다. 다른 변호사 한 명은 그 뒤편에 앉아 대기했다.

이날 점심시간은 한 시간여가 주어졌다. 오전 신문이 2시간30여 분 만에 끝나 낮 12시5분쯤부터 박 전 대통령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었다. 메뉴는 김밥·유부초밥·샌드위치 등이었다. 오후 1시10분 다시 조사가 시작됐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등에 대한 한 부장검사의 신문이 계속됐다. 4시간25분이 걸린 오후 조사 중간에 두 번의 짧은 휴식시간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오후 5시35분 경호실에서 마련해 온 죽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피로도를 감안해 식사를 위한 시간은 점심 때보다 긴 1시간40분 정도였다. 노승권 1차장검사는 브리핑에서 “질문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비교적 자신의 의견을 상세히 개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단답식으로 무성의하게 답변하고 있지 않다”고 진술 태도를 공개했다.

청와대 떠나던 날과 같은 남색 코트 입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삼성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사진 장진영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삼성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사진 장진영 기자]

오후 7시10분 재개된 한 부장검사의 신문은 당초 계획보다 늦은 오후 8시35분까지 계속됐다. 11시간 동안 조사를 진행한 한 부장검사에 이어 이원석 부장검사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이날 조사는 오후 11시40분에 끝났지만 박 전 대통령은 진술 조서 검토를 위해 자정을 넘겨서까지 조사실에 있어야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긴 하루는 이날 오전 4시30분쯤 시작됐다. 서울 삼성동 자택에 불이 켜진 시간이다. 자택 주변엔 밤을 지새운 지지자 수십 명이 “오늘 검찰 수사는 무효다”고 소리쳤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12개 중대 1000여 명의 경찰력을 투입했다.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이 경호원들과 함께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조문규 기자]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이 경호원들과 함께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조문규 기자]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집을 나선 오전 9시15분까지 5시간여 동안 검찰 출두 채비를 했다. 미용사 정송주씨 자매가 오전 7시11분 자택으로 들어갔다. 오전 9시15분 박 전 대통령이 검은색 차고 문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올림머리에 짙은 남색 투 버튼 코트, 같은 색 계열의 바지 차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차에 오르기 직전 주변의 지지자들을 둘러보며 “어휴, 많이들 오셨네”라고 혼잣말을 하며 옅은 미소를 띠기도 했다. 친박계 의원 중에선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자택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모습을 보였다. 그는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나왔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에 탄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다. 삼성동 자택을 출발한 승용차는 지하철 2호선 선릉역을 지나 테헤란로를 따라 8분 만에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했다.

글=김민관·박성훈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사진=조문규·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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