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허위 신고했다간 큰 코 다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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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A씨는 한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에 들어갔다. 운영자 B씨의 계좌번호를 확인하고 그 계좌로 5만원을 보냈다. 그리고는 은행에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며 전화로 계좌 지급정지 신청을 했다. A씨는 B씨에게 “지급정지를 취소시켜 줄 테니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B씨는 불법 사이트 운영자이다 보니 경찰에 신고하기가 어려웠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주고 지급정지를 풀었다. A씨는 이런 수법으로 12명에게 약 1000만원을 뜯어냈다.

불법 도박 사이트에 돈 입금한 뒤 #지급정지 시키고 돈 뜯는 사기 기승 #최고 징역 3년이나 벌금 3000만원

금융감독원은 21일 A씨처럼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사칭해 돈을 뜯어내는 사기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수사기관과 적극 협력해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제도를 악용한 허위신고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피해금 환급제도’를 운영 중이다. 사기범에게 속아 돈을 보냈다고 하더라고 돈이 빠져나가기 전 송금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하면 별도의 소송절차 없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해당 계좌의 주인이 2개월 동안 지급정지에 대한 별도의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경우다. 만약 계좌 주인이 ‘이 계좌는 사기 이용 계좌가 아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경우엔 피해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문제는 지급정지 신청을 전화만으로 간단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빠른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조치인데 이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아닌데도 소액을 입금한 후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계좌 주인에게 지급정지를 취소하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4~2016년 보이스피싱 피해를 이유로 20회 이상 전화로 지급정지를 신청한 이들이 70명에 달했다. 이들이 신청한 6922개 계좌 중 서면으로 피해구제를 신청한 계좌는 722개(10.4%)에 불과했다. 나머지 6200개 계좌는 합의금을 받고 지급정지를 취소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사기가 의심되는 부분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허위 신고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며 “허위신고자에 대한 수사기관 협조는 물론이고 금융거래시 불이익을 받는 ‘금융질서 문란 행위자’ 등록까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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