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가능 옐런’에 금융시장은 봄기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3호 18면

미 기준금리 인상에도 주가 오르고 달러 내리고

재닛 옐런 연준 의장

재닛 옐런 연준 의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지난 15일(현지시간) 다우존스는 도리어 113포인트(0.54%) 올랐다. 16일 코스피도 전 거래일 대비 17.08포인트(0.8%) 오르며 2015년 4월 27일(2157.54) 이후 23개월 만에 2150선을 넘어섰다. 한국 증시뿐 아니라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반등했다. 홍콩H지수(2.47%), 대만 자취안지수(1%), 중국 상하이종합지수(0.84%)가 비교적 큰 폭으로 올랐다. 일본 닛케이 지수는 0.07% 오른 1만9590.14에 마감했다.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 보통 채권 쪽으로 투자금이 이탈하면서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주가와 금리가 동반상승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점진적’ 발언에 한·중·일 증시 반등 #연준, 2019년까지 3% 금리 목표로 #경기 회복에 강달러도 완화 기대 #미 강경파들은 “속도 늦다” 지적도 #옐런 임기 끝나는 내년부터가 문제

주가뿐 아니라 원화 가치도 이론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한국에서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며 달러 값이 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값은 전일 대비 11.6원 하락한 1132원에 거래를 마쳤다. 민경원 NH선물 연구원은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이 완만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시장 컨센서스가 확산되면서 원화가 강세를 보였다”며 “단기적으로 달러 가치는 1130~1150원 대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두 차례 더 올려 1.25~1.5%로

재닛 옐런(70) 연준 의장은 금리 인상을 결정한 1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인상 횟수가 한 번 적거나 많아도 내게는 여전히 ‘점진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점진적이라는 표현에는 모호한 상황을 배제하고 명확한 금리 인상 스케줄을 따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시장이 악재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옐런은 “이번 금리 인상의 간단한 메시지는 미국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경제가 지금처럼 계속 호전된다면 금리를 약 3∼4개월에 한 번씩 인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경제의 정상화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도 호재가 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만에 기준 금리를 인상했지만 주가와 원화 가치가 상승한 배경이다.

이날 발표된 금리 ‘점도표(Dot Plot)’ 역시 이 같은 상황을 뒷받침한다. 점도표는 17명의 연준 위원들이 자신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금리 인상 시기(가로축)와 수준(세로축)을 점으로 표시한 그래프다. 이번 점도표를 보면 올 연말 기준 금리로 1.25~1.5%를 예상한 위원이 9명으로 가장 많았다. 한 번 올릴 때마다 인상 폭이 0.25%포인트라면 2017년 중에는 세 번 올린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의 금리 인상 결정은 미국 경제가 저실업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목표를 달성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다”며 “통화정책의 정상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세계 경제가 이전과는 다른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 셈”이라고 해설했다.

점도표에서 살펴봐야 할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연준 위원들이 점도표를 통해 올해부터 2019년까지 3년간 매년 세 차례씩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2019년까지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4.5%를 유지할 것이라는 예측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기준금리는 2018년 2.25%, 2019년 말에는 3%까지 오른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경제학과)는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벤 버냉키 식의 무제한적 통화 공급 정책은 완전히 끝났다”며 “연준은 앞으로 최대 고용보다는 2%라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놓고 탄력적인 금리 운용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폴 볼커(1979~1987), 앨런 그린스펀(1987~2005) 전 의장 재임 때처럼 연준이 본연의 책무인 물가 안정으로 점차 회귀할 것이라는 의미다.

포스트 옐런 후보들 양적완화에 비판적

문제는 옐런 이후에도 비둘기파(통화 완화)적 행보가 이어지겠느냐는 점이다. 옐런의 임기는 내년 2월 만료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선거운동 기간부터 옐런 의장을 반드시 교체할 것이라고 수차례 언급했다. 옐런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도와 무분별한 버블을 방조해왔다는 이유다. 옐런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매파들이다.

유력한 차기 연준 의장 후보인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올 초 전미경제학회에서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1993년 성장률과 물가 등을 감안해 만든 공식에 맞춰 금리 수준을 기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테일러 준칙(Taylor Rule)’을 내놓았던 그는 연준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의도적인 저금리 정책을 펴는 것에 반대해왔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냈던 글렌 허버드 컬럼비아대 교수 역시 “금융위기 직후 연준의 초기 대응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이젠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케인스 이론을 바탕으로 경기 조절에 힘을 싣는다면 공화당의 정책 방향은 화폐가치 안정을 우선하는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에 가깝다. 트럼프 정부는 당연히 버냉키 전 의장이나 옐런 의장의 양적완화(QE) 정책에도 비판적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석좌교수(경제학)는 “기준금리를 올해 3회 인상하더라도 물가상승률보다 낮아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라며 “지금과 같은 낮은 금리는 미국 경제에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버트 헬러 비자카드 최고경영자(CEO)는 “연준 통화정책은 여전히 뒷북(behind the curve)”이라며 “정상수준을 3%라고 본다면 현 기준금리는 이보다 무려 2%포인트 가까이나 낮다”고 주장했다.

국내 시중 금리 5% 눈앞, “한은 입장 밝혀야”

시장은 웃는 반면 한국은행은 시름이 깊어졌다.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미국과 한국의 금리 격차(스프레드)는 0.25~0.5%포인트로 좁혀졌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만 올려도 한·미 기준금리는 역전된다. 시장 금리는 벌써 금리 상승 추세에 동조하고 있다. 지난해 6월(1.25%) 이후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8개월째 동결 중이지만 연 2%대였던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5년 만기 고정형)는 연 3.43~4.81%로 올라 5%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규모를 감안할 때 한은은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그렇다고 손 놓고 방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처럼 수치를 분명히 못박진 못하더라도 ‘성장·고용 같은 주요 경제지표가 어떻게 움직이면 이렇게 행동하겠다’는 정도로 한은은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안내)’를 시장에 제시해 혼선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불확실성을 높이는 정치적인 돌출 변수도 문제다. 다음 달 있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마린 르펜 국민전선 당수가 승리할 경우, 달러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다시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오는 8월 독일 총선에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연임에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가지 이벤트 모두 안전자산인 달러를 선호하게 만들어 ‘강달러’를 부추기는 요소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 하반기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보다 높아질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지난해 브렉시트 투표 때와 마찬가지로 돌발 변수가 발생해 외환시장이 흔들리면 달러 값이 1250원까지 폭등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