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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외면한 ‘신의 손’ … 한국, U-20 월드컵 ‘죽음의 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57·아르헨티나)가 한국에 건넨 건 ‘죽음의 조’로 가는 티켓이었다. 그가 ‘신의 손’으로 뽑은 한국의 상대팀이 호명될 때마다 한국 축구 관계자들은 장탄식을 쏟아냈다.

아르헨·잉글랜드·기니와 같은 조 #승리 장담하기 힘든 대륙별 강호 #신태용 “죽었다 싶지만, 자신있다” #조기 소집 이승우 집중 조련키로

15일 수원 SK아트리움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본선 조추첨식에서 신태용(47)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최악의 조 편성 결과를 받아들었다. 개최국 자격으로 A조에 1번 시드를 받은 한국에 이어 아르헨티나(남미), 잉글랜드(유럽), 기니(아프리카) 등 대륙별 강호가 차례로 불려나왔다.

A조 팀이 하나씩 결정될 때마다 추첨자 마라도나의 반응은 요동쳤다. 마라도나는 2번 포트(24개 참가국 중 랭킹 7~12위)에서 아르헨티나를 뽑아든 직후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독일, 프랑스, 우루과이 등 우승권 강호들이 모인 1번 포트(1~6위) 팀 중에서는 약체로 꼽히는 한국을 만난 데 대해 만족하는 눈치였다. 3번 포트(13~18위)에서 잉글랜드를 뽑은 직후엔 잔뜩 굳은 표정이 화면에 잡혔다. 잉글랜드는 축구 강국일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와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등으로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4번 포트(19~24위)에서 기니를 뽑은 뒤엔 그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조추첨식 내내 시시각각 표정이 바뀐 마라도나와 달리 신태용 감독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조별리그 상대 세 팀 중 승리를 장담할 만한 약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 6회 우승에 빛나는 전통의 강호고, 잉글랜드와 기니 역시 유럽과 아프리카 예선을 3위로 통과해 만만치 않다. 신 감독은 “이른바 ‘죽음의 조’에 들어간 것 맞다. 아르헨티나에 이어 잉글랜드까지 나왔을 때 솔직히 ‘죽었다’ 싶었다. 기니까지 쉬운 팀은 하나도 없다”며 “팀을 이끄는 선장이 인상 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이니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대표팀, 5월 20일 기니와 개막전

이번 대회는 5월 20일부터 6월 11일까지 수원, 전주 등 국내 6개 도시에서 열린다. 24개국이 4개팀씩 6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펼친다. 각 조 1·2위 12팀과 조 3위 중 상위 4팀이 16강 토너먼트에 오른다. 한국은 ‘죽음의 조’에 속한 만큼 ‘조 3위 16강행’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관건은 5월 20일 기니와 개막전(전주)이다. 1차전에서 이기고 출발하면 아르헨티나와 2차전(23일·전주)과 잉글랜드와 3차전(26일·수원)의 부담을 그 만큼 덜 수 있다.

강호들을 만난 만큼 한국의 득점 방정식을 완성할 FC바르셀로나(스페인) 공격수 이승우(19)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신태용 감독은 국내파와 발 맞출 시간이 부족했던 이승우를 곁에 두고 집중조련한다는 계획이다. 신 감독은 “오는 19일 대표팀에 소집하는 이승우가 테스트이벤트(4개국 초청 국제대회) 이후에도 국내에 남아 월드컵을 준비할 것”이라며 “유럽 유스리그 4강전 때만 소속팀에 잠깐 복귀하는 걸로 조율했다”고 밝혔다. 바르셀로나 B팀 소속 백승호(20)는 대회 개막까지 국내에 머문다.

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원은 “외국팀들 입장에선 이승우가 가장 많이 알려진 선수다. 바르셀로나 소속이라는 후광효과가 있다. 이승우가 직접 골을 넣어도 좋고, 상대 수비를 끌어내 동료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거나 어시스트해도 좋다”고 말했다. 조추첨자로 나선 차범근 U-20 월드컵조직위 부위원장은 “한국이 어렵게 된 건 사실이지만 A조 다른 나라도 홈팀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2002년 (월드컵)의 성과를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송지훈 기자, 박린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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