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바꾸려 청약예금 든 사람들 "이게 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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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실수요자 중심으로 청약제도를 전면 개편키로 함에 따라 무주택자가 집을 분양받을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그러나 제도 변경으로 청약자격이라는 기득권을 잃어버릴 청약통장 가입자가 적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무주택자를 지원하기 위해 유주택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사유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유주택자 분양은 힘들어져=지금도 공공택지 내에서 분양되는 주택의 경우 대한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공급하는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만 청약자격을 무주택자로 한정하고 있다. 민간건설회사가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25.7평 이하 아파트도 공급분의 75%를 무주택자에게 우선 공급한다. 다만 민간 분양분의 경우 무주택자에게 우선 순위만 줄 뿐 유주택자도 청약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방침은 민간 분양분의 나머지 25%까지 포함해 중소형 아파트 전체의 청약기회를 무주택자에게만 주겠다는 것이다.

무주택자에게만 청약기회를 주는 중소형 아파트의 범위가 25.7평 초과로, 예를 들어 30평 이하로 정해질 경우엔 청약 기회를 잃는 청약예금.부금 가입자가 훨씬 늘어난다. 강팔문 건교부 주거복지본부장은 "중소형 아파트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전문가들의 연구와 여론을 수렴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주택자에게 혜택을 주는 공공택지 내 아파트 분양 물량이 갈수록 느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사업승인 기준으로 공공택지 분양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아파트의 40%에 이른다. 특히 판교 신도시, 송파 신도시 등 대형 개발지역은 대부분 공공택지다. 정부가 신도시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을 밝히고 있어 유주택자가 불리해지는 공공택지 분양분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당첨자를 가리는 방식이 추첨제에서 가점제로 바뀌는 것도 무주택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가구주의 나이와 가족 수가 많고, 특히 무주택 기간이 긴 청약자일수록 당첨 기회가 높아지게 된다. 물론 정부는 25.7평 이하와 초과 주택의 가점 항목과 가중치에 차등을 두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주택 서민에게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만큼 25.7평 초과 아파트에서도 무주택자가 유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 아파트 건설시장 위축 우려도=무주택자에게 유리하도록 청약제도가 바뀌면 기존 청약통장 가입자의 혼란과 반발이 예상된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청약통장 가입자는 모두 720만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주택 소유자도 가입할 수 있는 청약 예금.부금 가입자는 500만 명. 이들 중 상당수가 중소형 아파트의 청약기회를 무주택자에게만 준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청약기회를 잃어버릴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가점제는 공공택지 분양분을 포함해 모든 아파트 청약에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연구원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공택지 분양분에만 가점제를 적용한 뒤 적용범위를 점차 넓혀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분양가 상한제로 분양가를 규제하고 있어 무주택자는 가격과 청약자격에서 이중 혜택을 보는 것"이라며 "유주택자 입장에선 재산권 침해와 더불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청약통장 해약자가 늘고 신규 가입자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주택기금의 재원 부족으로 이어져 국민임대주택 건설 등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가점제가 실시되면 집을 옮기려는 대체 수요가 줄어들어 아파트 건설시장까지 위축시킬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의 관계자는 "청약통장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집을 옮기려는 수요"라며 "이들을 보호하는 조치도 함께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가점제 실시로 대체 수요가 줄면 아파트 분양 자체가 어려워져 건설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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