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전화번호 48개 저장된 휴대전화...그녀에게는 목숨 그자체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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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수단이나 다름없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50대 여성이 경찰의 각별한 수사로 전화기를 찾았다.

경찰의 각별한 수사 노력으로 1주일 만에 되찾아 #혼자 사는 50대 여성, 건강 좋지 않아 #매일 전화로 식당 아르바이트 구해 생활

지난달 6일 자정 무렵.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파출소에 50대 여성 A씨(54)가 울먹이며 찾아왔다. 생활보장대상자로 혼자 사는 그는 "길에서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꼭 좀 찾아달라"며 눈물로 하소연했다.

사연은 안타까웠다. 휴대전화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식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A씨의 생계와 직결된 식당 전화번호가 48개나 저장돼 있었다. 이 번호들은 A씨의 목숨이나 다름없었던 것.

직업이 없는 A씨는 매일 식당에서 몇 시간씩 아르바이트해 마련하는 적은 돈으로 혼자 어렵게 살아왔다. 건강이 좋지 않아 한 식당에서 직원으로 ‘풀 타임’ 근무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A씨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저장된 번호로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오늘은 혹시 몇 시간이라도 아르바이트할 수 있는지"를 일일이 물어보며 하루하루의 일자리를 구했던 것.

당장 생활이 막막해진 A씨는 고양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에 매일 연락해 "빨리 좀 찾을 방법이 없겠느냐"며 울먹이며 호소했다.

신고 이튿날 사건을 접수한 고양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은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휴대전화 찾아주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A씨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 주변 폐쇄회로 TV(CCTV) 10여 개를 모두 돌려보기 시작했다. 이후 며칠이 지나 한 30대 남성 B씨(32)가 휴대전화를 줍는 듯한 모습을 CCTV에서 찾아냈다. 또 B씨가 이후 인근의 한 교회로 향하는 동선까지 확보했다. 경찰은 이어 신고접수 후 1주일만인 지난달 14일 마침내 휴대전화를 찾아내 A씨에게 돌려줬다.

직업이 없는 B씨는 “금방 주인을 찾아주려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그러나 B씨가 휴대전화 전원을 장기간 꺼둔 데다 돌려주지도 않았다는 점 등에 비춰 선의가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B씨를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사건을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

박승우 고양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장은 “휴대전화를 찾게 된 A씨는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1주일간 일도 못하고 쉬었는데 너무 감사드린다’며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수사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고양=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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