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건강, 지켜야 산다] ① 노인은 성인이 아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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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훈 기자]

노인(老人). 말 그대로 '나이가 들어서 늙은 사람'을 뜻합니다. 사전적 의미입니다. 법적으로는 어떨까요. 보통 만 65세 이상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전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모든 노인은 성인을 의미합니다. 성인이 아닌 노인은 없지요.

의학적인 개념으로 가면 조금 달라집니다. '노인=성인'이라고 말하기 애매해집니다. 따져보면 '노인≠성인'이라는 쪽에 좀 더 가깝습니다. '무슨 소리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인은 성인과 다르고, 그래서 노인은 성인과 다르게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단과 처방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겠죠. 의학 분야에 '노인의학(geriatrics)'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럼 노인은 일반 성인과 얼마나 다를까요? 그 전에 짚고 가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노화'라는 개념입니다. 노화는 여러 방식으로 정의가 내려지곤 하는데요. 의학적 관점에서 말하는 노화의 의미를 정리하면 대충 이렇습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유해한 변화들이 축적돼 생체기능이 저하되고 질병에 걸릴 확률이 증가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노인은 결국 노화가 거듭된 결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노화의 개념은 노인을 설명하는 데 중요합니다.

정의에는 보다시피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생체기능이 떨어진다는 것, 또 하나는 질병에 걸릴 확률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생체기능 측면에서 노인의 건강상태를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운동기능이 떨어져 있습니다. 걸음걸이부터 달라집니다. 60세까지는 보행장애가 있는 사람이 15%에 불과하지만 노인의 경우 82%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걷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면 그만큼 낙상 위험에 노출됩니다. 노인건강에서 낙상은 무섭고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골절과 뇌 손상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한해 낙상으로 사망한 노인 83만여명, 낙상 골절 시 1년 내 사망 확률 54%(남성 노인)'라는 수치가 무서움을 잘 말해줍니다. (낙상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로 다뤄보겠습니다.) 생체기능 저하가 건강상 위험을 초래한다는 얘기죠.

회복기능도 떨어집니다. 우리 몸은 질병이나 사고로 생활능력이 떨어졌을 때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몸 상태가 좋아져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말합니다. 노인의 회복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래프가 있습니다.

▲ 출처 : 란셋(Lancet, 2013)

일반 성인은 감기·몸살 등 사소한 질환이 생겼을 때 신체 기능이 약간 떨어집니다. 떨어진 후에 다시 회복하는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죠. 바로 회복합니다. 회복한 후에는 당연히 예전 상태가 됩니다.

반면 노인은 일반 성인과 차이가 납니다. 단순해 보이는 이 그래프가 담고 있는 내용은 다섯 가지입니다.

우선 평소 생활능력이 일반 성인보다 한참 떨어집니다. 그리고 사소한 질환이 생겼을 때 신체 기능이 일반 성인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집니다. 기능이 떨어진 후에는 일반 성인과 달리 의존적이 됩니다. 회복 시간도 한참 길죠. 게다가 회복이 되더라도 예전 수준까지 회복하지 못합니다. 일반 성인과는 다른 노인의 신체 기능 상태입니다.

신진 대사도 떨어집니다. 영양분을 흡수, 활용, 배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깁니다. 노화가 진행되는 것은 몸의 부위를 가리지 않습니다. 호르몬 체계의 활성 능력도 떨어집니다. 영양분, 호르몬은 대부분 콜라겐과 엘라스틴으로 이뤄져 있는 연결 조직을 통과해야 비로소 뼈와 피부에 이르게 됩니다. 근데 이 조직에 노화가 진행돼 콜라겐이 잘 생성되지 않고 탄력성도 잃게 됩니다. 연결 조직은 점점 딱딱한 형태로 굳어가죠. 호르몬과 영양분은 뼈와 피부로 공급되는 게 어려워집니다. 골다공증이 잘 생기고, 피부에 주름이 생기는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질병에 걸릴 확률을 짚어볼까요?

누구나 노인은 일반 성인보다 병에 잘 걸릴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당연한 얘기죠. 나이가 들면서 수도관이 녹슬듯 혈관 안쪽 벽에 찌꺼기가 들러붙으면서 좁아지고 변형되어 갑니다. 고혈압을 비롯한 각종 혈관질환이 생기는 과정입니다. 혈관질환은 신장을 비롯한 다른 장기를 망가뜨리는 데도 영향을 미칩니다. 암 등 중증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높아지죠. 

▲ 출처 : 란셋(Lancet, 2012)

실제로 노인들은 많은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노인 중에서도 나이가 많을수록 앓는 질환의 종류가 많아질 위험이 높아집니다. 그래프에서도 보듯 65~69세의 경우 3명 중 1명은 앓고 있는 질환의 수가 3가지 이상입니다.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앓고 있는 만성질환의 수가 평균 2.6가지라고 합니다. 앓는 질환이 많아져 복용하는 약의 수도 많습니다. 평균 8.3개의 약을 복용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7개의 약을 복용하는 노인도 있다고 하네요.

결국 노인은 여러모로 건강상태가 일반 성인보다 좋지 않다는 얘기죠. 약도 조심해야 합니다. 약에 대한 반응이 달라 부작용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약물 해독능력이 일반 성인 대비 60~70%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약물 부작용 위험은 일반 성인의 4.3배나 되고요. 미국 질병관리센터(CDC)는 2012년 미국에서 평균 10만 명 정도의 노인이 약 부작용 때문에 응급으로 입원하고, 이 중 절반 이상이 각종 치료제 오·남용으로 인한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위험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일부 약품을 '노인주의의약품'으로 지정해 노인에게 처방을 신중히 하도록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이제 노인이 일반 성인과 조금은 달라보이나요? 이 차이를 아는 것부터가 노인 건강을 챙기는 첫걸음입니다.

[실버 건강, 지켜야 산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고령자에겐 암보다 무서운 노쇠'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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