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원의토론이야기] 듣기의 일곱 가지 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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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공군 참모총장을 불렀다. 회의할 때 말하는 사람은 대통령이었고, 공군 참모총장은 듣기만 하면서 그저 반응만 보였다. 회의가 끝나고 공군 참모총장이 방을 나가자 대통령이 옆에 있던 비서에게 그는 대단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그때 비서가 "그는 듣기만 하고 말은 전혀 안 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대통령은 "듣기를 잘하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듣기의 태도는 일곱 가지다. ①아예 무시하기 ②듣는 시늉하며 건성으로 듣기 ③'찰떡'같이 말했는데 '개떡'같이 잘못 알아듣기 ④선택적으로 골라 듣기 ⑤비판적으로 듣기 ⑥열린 마음으로 공감하며 듣기 ⑦차이.관계와 전체 속에서 자신의 말까지 듣기 등이다.

①은 TV토론에서 자주 본다. 군소리와 군말로 다른 사람의 말을 방해하는 토론자가 많다. ②는 전화통화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상대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계속해서 "예예- 예예-"를 연발하는 사람이 많다. 빨리 말을 끝내달라는 뜻일까? 대답도 지나치면 듣기에 방해가 됨을 알아야 한다. 대학에서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에게 무슨 내용을 들었는지 물어보면 그 답은 천차만별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들을 수 있는 것만, 또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전자를 인식능력, 후자를 문제의식이라 한다.

③은 인식능력, ④는 문제의식에 관련된다. 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이성의 잣대로 재느라 전체를 보지 못하거나, 혹은 한 개의 잘못을 보느라 다른 아홉 개를 놓치는 경우다.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빼라는 격이다.

'연극은 가죽과 속살 사이에 있다'는 명언이 있다. 공감성의 본질을 잘 드러낸 말이다. 가죽은 연기자이고 속살은 극중 인물이다. 가죽이 (결코 같을 수 없는) 속살에 붙어 있듯이 훌륭한 연기자는 극중 인물과 동화된다. 슬픈 연극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배우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 듣기의 공감성도 마찬가지다. 청자와 화자의 관계도 연극에서처럼 가죽과 속살의 관계여야 한다. 이것이 ⑥이다. ⑦은 듣기의 달인이 보여주는 경지다.

똑같은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데, 어찌하여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하게 될까. 바로 듣기의 수준 때문이다. 그것은 듣기의 태도에 달려 있다. 똑같은 책을 읽는 독서 역시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제대로 읽어라. 말을 잘하려면 듣기를 잘해라.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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