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의 흠 남기지 말라 - 노동 관계법의 보사위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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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동안 논란이 분분했던 노동관계 법률안이 28일 국회보사위 의결을 거쳐 사실상 확정되었다.
새로운 노사관계의 정립과 보호를위한 법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지난 여름 전국 산업현장을 휩쓸다시피 했던 노사분쟁의 대부분이 현행법의 한계를 벗어난 행위였음에도 이를 법으로 다스리지 못했었다. 실정법 자체가 얼마나 허술했는가를 입증해준 셈이다. 그와같은 무법의 공백상태를 줄이고 권위있고 효력을 발휘할수 있는 노동관계법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했다.
개정된 노동관계법의 주요 골자를 보면 노조의 조직형태와 설립요건을 자율화하고 노조가입을 전제로 해서 취업하는 유니언숍 제도를 조건부로 허용하고 있으며 행정관청의 노조해산명령권 조항도 삭제했다. 노사문제에 대한 제3자의 개입금지 조항과 정치활동 금지 조항은 그대로 존속시켰다.
개정노동관계법이 이처럼 근로자의 자율성과 권익을 크게 제고시킨 것은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개정작업을 서두른 나머지 신중성이 결여된 부분도 없지 않다. 예컨대노조 설립요건을 근로자 2명이상이면 노조설립이 가능하게됐다. 이는 노조설립이 용이해진다는 장점은 있지만 극소수 근로자들이 한꺼번에 여러개의 노조를 설립할 경우 노조끼리의 대표권시비 분규로 노사관계가 도리어 불안해질 우려도 있다.
기존 노조가 있는 경우는 새로운 노조를 인정치 않는다고는 하나 신규로 노조를 설립한 사업장에서 동시에 복수노조가 탄생할 경우 이를 둘러싼 법적 시비는 어떻게 가릴 것인가.
산업별 노조설립을 허용하는 조항 역시 좀 더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할것 같다. 근로자의 노동운동을 효율화하고 협상능력을 강화하는데 유리하다는 장점은 있다. 그러나 산업기반이 아직도 취약한 우리 현실에서는 분규가 확산돼 관련산업 전체가 마비될 우려도 외면할 수 없다. 더구나 산별 노조수의 제한규정이 없어 상급노조가 복수로 결성돼 난립할 소지도 충분히 있다.
경제계는 벌써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했으나 국회는 외면해버렸다.
개정노동관계법은 조문수정 작업을 거쳐 본회의 통과라는 절차를 남기고 있다. 여야 정당들은 선거를 앞두고 표밭만을 의식한 나머지 국가경제의 장래를 내다보는데 소홀해 졸속을 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새로운 법에 의해 노동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는 앞으로 진통과 혼란이 따르리라는 전망은 어렵지 않다. 업계도 지난날 과보호 상태에서 젖어 있던 안일과 타성에서 과감히 탈피, 새롭고 적극적인 사고로 노사문제에 접근할 태세를 갖추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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