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대체 불가능한 울버린, 휴 잭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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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히어로 영화 사상 최초로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호평받고 있는 ‘로건’(3월 1일 개봉, 제임스 맨골드 감독). 배우 휴 잭맨(49)이 울버린을 연기한 지 17년 만에 ‘엑스맨’ 시리즈(2000~)에 작별을 고하는 이 스핀오프 영화를, 세 필자가 각기 다른 관점으로 돌아봤다. 잭맨이 ‘로건’과 맺은 관계, 안티히어로의 역사적 맥락에서 로건이 차지하는 자리, 서부극 장르의 영향력 등등. 이규원 그래픽 노블 번역가가 쓴 것처럼, ‘로건’의 울버린 안에는 울버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 불가능한 울버린, 휴 잭맨

“울버린은 그동안 내게 큰 기쁨을 선사해 줬다. 그러니 마지막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내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너무 요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 그랬다.”

'로건'을 향한 세 가지 시선

‘엑스맨’(2000, 브라이언 싱어 감독)부터 ‘로건’까지, 17년간 울버린으로 살아온 휴 잭맨은 자신의 분신을 떠나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잭맨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분신에게 장엄하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울버린이 누구인가. 야성과 인간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가장 어둡고 고독한 히어로다. 이런 복잡다단한 영웅을 완성한 건 ‘맨 중의 맨’ 휴 잭맨이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호주 무명 배우였던 그가 마블 코믹스의 대표 영웅이 되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에드워드 노튼, 러셀 크로, 더그레이 스콧 등 많은 스타들이 물망에 올랐으나 모두 바쁜 스케줄을 이유로 울버린 역을 고사했고, 결국 친구였던 러셀 크로의 추천으로 잭맨이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원작 캐릭터의 키가 160㎝이고 캐나다인이었던 반면, 잭맨은 호주 출신에 키 189㎝의 장신이라 팬들의 불만이 적잖았다. 우려 속에 1편이 공개된 후 걱정은 곧 기우로 밝혀졌지만 말이다.

잭맨은 이 늑대 인간에게 펄떡이는 야수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터질 것 같은 근육과 날렵하면서 파워풀한 클로(Claw) 액션, 파괴적 욕망으로 가득한 눈빛, 분노의 포효는 관객에게 생경한 충격을 선사했다. 잭맨은 여기에 고뇌하는 인간, 로건의 얼굴까지 포개 그렸다. 자신의 뿌리를 모르기에 고독하고, 양심과 처절하게 싸워야 하며, 주변에 늘 죽음과 상실이 맴도는 문제적 인간 로건. 잭맨은 들끓는 에너지로 로건과 울버린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엑스맨’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그는 할리우드의 스타가 됐다. 로맨틱 코미디·스릴러·역사물 등 연기의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고, 또 다른 히어로 영화 ‘반 헬싱’(2004, 스티븐 소머즈 감독)으로 흥행 축포도 터트렸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뮤지컬 배우로서 존재감도 드러냈다.

더 이상 울버린의 후광이 필요 없어 보일 때쯤, 잭맨은 예상 밖의 선택을 한다. 울버린을 더 깊이 파고든 것이다. 아예 프로듀서로 나서 울버린의 첫 번째 스핀오프 ‘엑스맨 탄생:울버린’(2009, 개빈 후드 감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6년 동안 울버린을 연기하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했다. 다중적인 캐릭터인데 ‘엑스맨’ 시리즈는 그를 피상적으로 다뤘다. 그의 삶만 제대로 파고들어도 원작의 주제를 깊이 있게 반영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잭맨의 의지 덕분에, 빈칸으로 남아 있던 울버린의 과거는 비극적인 가정사와 살인병기로 키워진 젊은 시절로 촘촘히 채워졌고, 더욱 입체적인 인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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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편의 ‘엑스맨’ 시리즈와 두 편의 스핀오프로 나아간 ‘울버린 유니버스’는 잭맨의 의지가 확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배우와 배역의 완벽한 상승 작용. 그 최후의 결과물이 바로 ‘로건’이다. 잭맨은 ‘레 미제라블’(2012, 톰 후퍼 감독) ‘프리즈너스’(2013, 드니 빌뇌브 감독) 등을 통해 더욱 두툼해진 연기 스펙트럼으로, 가장 처절하고 인간적인 로건을 완성한다. “클로 이상의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잭맨은 구시대의 과오를 정리하고, 자신의 죄를 희생으로 씻어 내려는 ‘성숙한 어른’으로 로건을 그려 보인다.

노쇠하고 약해졌지만 온 힘을 다해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를 지키려는 그의 분투에, 쉰 살을 바라보지만 최선을 다해 괴력의 영웅을 연기하려는 배우 잭맨이 오버랩된다. 휴 잭맨은 곧 울버린이었고, 울버린은 곧 휴 잭맨이었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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