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헌재 앞은 '국론 분열·대립'의 현장…선고 앞둔 재판관들 침묵 속 출근

중앙일보

입력

헌재는 탄핵하라! 기각하면 파국이다!
“탄핵 무효! 탄핵 각하! 국회 해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은 분열된 국론이 대립하는 현장이다. 통행과 출입을 제한 중인 경찰의 경계 근무로 두 집단의 시위·집회는 헌재에서 300미터 가량 빗겨난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주변에 집중되고 있다.

물리적 충돌은 없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피커를 동원한 고성 만이 오간다. 헌재 앞에는 경찰이 방송장비나 손 팻말을 동원한 기자회견을 제한하고 있어 2~3명 정도의 소규모 집회자 만이 서있다.

안국역에서 헌재로 진입하는 차로와 보도는 경계근무에 나선 경찰들이 통제 중이다. 도로 옆으론 경찰 병력을 이동시킨 경찰 버스차량이 긴 차벽을 만들었다. 취재진이 탄 차량도 멈춰서서 “어디를 가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언론사 신분증을 보여주고 나서야 헌재 기자실로 향할 수 있었다.

경찰은 현재 전국의 경계태세를 한단계 격상해 비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9일 오전 8시부터는 서울 전역에 ‘을호비상’을 발령했다. 을호비상령이 발령되면 경찰은 전체 가용경력의 50%까지 동원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주변에는 평소 투입 병력(2개 중대)를 10배 늘린 20개 중대, 1500여명의 경찰이 투입됐다. 선고 당일인 10일에는 최고 경계 태세인 ‘갑호비상령’이 발령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선고 이후 벌어질 소요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안국역 사거리엔 이날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돈본부(탄기국)’ 회원 수십여명이 시위 증이다. 이들은 길에 스피커를 설치해 주말 탄핵반대 집회에서 외쳤던 구호를 반복 재생하고 있다.  

여기에 전날 밤 헌재 인근에서 밤샘 농성을 벌이던 탄핵 반대 시위자들이 가세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옆에 세워두고 ‘탄핵 반대’피켓을 치켜들고 있다. “탄핵심판은 위법하니 ‘각하’가 아니라 ‘무효’가 맞는 것”이라는 대통령 대리인단 소속 김평우 변호사의 주장에 따라 피켓에 썼던 ‘각하’를 A4 용지로 덮고 그 위에 ‘무효’라고 쓴 피켓도 여럿 보였다.

탄핵반대 단체들은 헌재 앞을 떠날 생각이 없다. 선고당일인 10일 오전까지 밤을 새운 뒤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일 계획이다.

반면 탄핵에 찬성하는 ‘촛불 민심’은 아직 숫자가 적다. 안국역 사거리에 모인 인원이 20여명 정도다.

하지만 탄핵 찬성자들은 이날 오후 7시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로 반격에 나선다. 평일에 열리던 소규모 집회가 탄핵 선고를 앞두고 대규모로 커질 기세다. 촛불집회를 마친 뒤엔 헌재까지 행진을 벌이고 오후 9시쯤 해산할 계획이다. 

◇헌법재판관들 침묵 속 출근…오늘도 평의 진행=헌법재판관들은 이날도 침묵 속에 출근했다. 이정미(55)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오전 9시 5분쯤 검은색 에쿠스 차량을 타고 헌재 청사로 들어왔다. 검은 정장 차림의 사복 경찰들의 경호를 받으며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취재진을 향해 가볍게 머리를 숙였지만 입은 굳게 다물었다. 

이어 안창호·이진성 재판관도 근접 경호를 받으며 출근길에 올랐다.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역시 취재진의 질문엔 일절 답하지 않았다.

재판관들은 이날도 재판관 평의를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탄핵사유 쟁점을 점검 하고 10일 선고에 앞서 재판관 각자의 입장도 드러날 전망이다. 하지만 실제 파면·기각 결정을 내리는 표결인 '평결'은 선고 당일인 오전 11시에 임박해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윤호진·서준석·문현경·여성국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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