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정치] 6일부터 인사청문회 … 왜 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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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선

대통령 임명 250개 자리 중
23개만 국회서 반대 가능

우리나라 청문회는 네 종류가 있거든요. 조사.입법.감독.인사청문회가 바로 그것이에요. 이 중 제일 유명한 것은 조사청문회일 겁니다. 1999년 '옷 로비 청문회' 기억하세요? 청문회가 시작되자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구파발 출신 김…봉남입니다"라고 자신의 인적 사항을 소개했었죠. 그때 청문회는 검찰총장 부인이 대기업 회장 부인에게서 값 비싼 옷을 받았는지를 알아보는 조사청문회였어요. 진실을 듣자는 청문회였지요. 노무현 대통령을 '스타 의원'으로 만든 88년 '5공 청문회'도 조사청문회였어요. 입법청문회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청문회입니다. 공청회 같은 겁니다. 감독청문회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된 건 아닌지 전문가들에게 들어보는 자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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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엔 인사청문회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마침 오늘부터 국회에서 부총리와 장관, 그리고 경찰청장 후보자 등 6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리잖아요.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국가 주요직에 지명한 사람들이 과연 적합한 인물인지를 본인과 증인들에게서 들어보는 자리입니다.

바쁜 세상에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임명했으면 그만이지, 왜 또 의원들이 나서냐고요? 어차피 후보자 헐뜯기나 하는 자리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알고 보면 말이죠.

핵심은 '국민의 견제'입니다=인사청문회의 원조는 미국입니다. 1787년 연방헌법을 처음 만들 때 제2조 2항에 적어 넣었어요. 대통령이 정부 고위 공직자를 임명하면 국회가 '인준(consent)한다'는 내용이지요. 그리고 이를 위해 상원 의사규칙에 따라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답니다. 미국이 나라를 세우는 와중에도 이렇게 인사청문회를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뭘까요? 해답은 연방헌법 기본 정신인 '삼권분립'에서 찾을 수 있어요. 삼권분립이란 행정부(대통령)와 입법부(국회), 그리고 사법부(법원)가 권력을 나눠 갖는 걸 뜻합니다. 권력 독점을 막는 장치지요.

그럼 삼권분립과 인사청문회가 무슨 관계냐고요? 대답은 이렇습니다. 많은 경우 권력은 인사권에서 나옵니다. 내 '밥줄'을 쥔 사람에게 할 말을 제대로 하기란 어렵잖아요. 출세했다는 국가 고위직은 더 심하겠지요. 그러니 이들의 임명.해임권을 대통령 혼자 쥐락펴락하면 누가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되면 나라는 대통령의 1인 독재에 빠지기 쉽죠. 바로 이걸 막기 위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에게 인사청문회와 인준권을 주는 겁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국민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둔 거지요.

우리는 아직 '반쪽' 청문회예요=우리나라에 인사청문회라는 게 들어온 건 최근입니다. 2000년 6월에야 인사청문회법이 공포됐거든요. 그래서 헌정사상 첫 인사청문회를 받은 사람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청문회 대상은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관 13명 전원▶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국회 선출 3인▶중앙선관위원 중 국회 선출 3인뿐이었답니다. 23명이었지요. 많아 보이지만 미국에 비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미국은 차관보.대사.영사.연방검사까지 포함해 모두 400여 명이나 되거든요. 미국 대통령은 인사권 행사 때 한국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견제를 받는 셈이죠.

■ 검증 어떻게

근거없는 흠집내기 안 돼
공정 시시비비 가려야

그 후 우리의 인사청문회법도 개정돼 청문회 대상이 넓어졌어요. 현재는 권력기관 '빅4'라고 불리는 국가정보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2003년 1월 개정)과 국무위원(2005년 7월 개정)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우리 인사청문회는 아직도 '반쪽'입니다. 국회가 인사청문회만 열고 임명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자리가 아직도 반 이상이기 때문이지요.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자리는 58개입니다. 그중에서 국회가 반대하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없는 자리는 23개에 불과해요. 나머지 35개는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지만 국회가 단독으로 임명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자리랍니다. 오늘부터 하는 인사청문회도 반쪽입니다. 얼마 전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등원을 거부하면서 "어차피 우리에게 반대 권한이 있는 게 아니니 인사청문회에도 불참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하지만 반쪽 청문회라도 열지 않는 건 곤란합니다. 청문회 과정 자체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여론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반대 여론이 들끓으면, 대통령이라고 무조건 고집을 피울 수야 있겠습니까.

◆잘못 있으면 망신당하죠=앞서 얘기한 이한동 전 총리. 그는 70년대 시골에 땅을 사려고 부인이 위장전입했다는 의혹으로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어요. 그럼에도 이 전 총리는 국회의 임명동의 투표를 통과했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문턱을 넘은 건 아니에요. 2002년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장상 이화여대 총장과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이 국회 임명동의 투표에서 차례로 실패했어요. 지금까지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은 사람은 모두 42명. 이 중 세 명만이 쓴맛을 봤답니다.

■ 미국에선

차관보 포함 400여명 대상
한국보다 견제 훨씬 심해

공정하지만 시시콜콜해야죠=인사청문회에선 때로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있는데"라는 식의 모호한 질문으로 닦달하는 의원들이 있습니다. 근거 없는 '흠집내기용'이지요. 하지만 이런 식의 인신 공격이 아니라면, 후보자 사생활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 청문회 취지에 어긋난다고는 할 순 없어요. 인사청문회 대상자가 하나같이 높은 도덕성이 필요한 우리나라 최고의 공인(公人)들이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마라톤 완주하셨다죠? 훌륭합니다"(허준영 경찰청장 청문회 때) 같은 말로 시간이나 때우려는 의원들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200년 이상의 전통을 이어온 미국 인사청문회는 우리보다 지독하게 후보자를 검증합니다.

87년엔 연방대법관 후보자 로버트 보크의 인사청문회로 미국 전체가 들썩였어요. 공화당은 보수적 판결 입장인 그를 연방대법관에 앉히려고 했지만 민주당이 이를 막기 위해'보혁 논쟁'을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사소한 언행까지 점검한 청문회가 수개월간 이어졌고, 그는 결국 '낙마'했답니다.

글렌 라우리라는 하버드대 교수는 89년 교육부장관으로 지명된 뒤 청문회 과정에서 20년 전 대학교 학부 시절에 등록금 대출을 받았지만 갚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즉각 사과하고 후보자 지위를 사퇴했어요.

남궁욱 기자

*** 바로잡습니다

◆ 2월 6일자 5면 '오늘부터 인사청문회…왜 하나요' 기사의 그래픽 중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후보자 아들의 재산은 1억4000만원이 아니라 1억446만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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