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아트센터 2. 시애틀 베나로야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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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98년 9월 12일 저녁 미국 시애틀 도심에 '성조기여 영원하라'라 울려 퍼졌다. 시애틀 심포니가 창단 95년만에 처음 얻게 된 심포니 전용홀(베나로야홀. 2600석) 개관을 기념하는 연주회에서 우렁차게 터져나왔다. 지휘자나 청중이나 할 것 없이 벅찬 감격에 젖었다.

베나로야홀은 시애틀의 심장이다. 도심간선로인 3번가 한 블럭을 차지하는 문화의 중심이다. 밤엔 주변 초고층 오피스 빌딩의 차가운 불빛과 대조적인 따뜻한 샹젤리에 조명을 내비치며 시민들의 마음을 데워준다. 무엇보다 베나로야홀은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문화사랑의 상징이다.

시애틀 심포니(음악감독 제라드 슈워즈)는 이전까지 전용홀이 없어 시내 여러 곳을 전전했다. 62년부터는 시애틀 센터 오페라 하우스(3200석) 무대에 섰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엔 홀이 너무 컸고 잔향 시간이 너무 짧았다. 시애틀 오페라, 퍼시픽 발레와 함께 한 지붕 세 가족을 이뤄 애를 먹었다.

전용 심포니홀 신축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86년. 크라일샤이머 재단이 시애틀 센터 근처의 땅을 내놓았고 나중에 도심으로 부지가 바뀌었다. 도심 블럭 전체의 건물을 헐어내고 콘서트홀이 우뚝 들어섰다. 베나로야는 1500만 달러(약 150억원)라는 거금을 쾌척한 클래식 애호가의 이름. 시 예산지원까지 모두 1조 900만 달러(약 10조 90억원)가 들어갔다.

도심인지라 지하로 기차와 버스 터널이 지나가기 때문에 바깥 소음과 진동을 차단하기 위한 특수 공법을 썼다. 이를테면'상자 속의 상자'인 셈이다. 310개의 고무 베어링이 건물을 떠받친다. 객석 내부는 구두 상자 모양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케네디 센터 등의 음향 설계를 맡은 시릴 해리스(컬럼비아대 명예교수)가 음향 컨설턴트로 참가했다. 도심의 금싸라기 땅이 아깝다고 콘서트홀 위에 호텔이나 오피스 빌딩, 도서관을 올리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단독 건물을 짓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건물 내에는 고급 레스토랑, 악기 체험을 위한 교육센터, 540석짜리 리사이틀홀, 24시간 영업하는 아울렛 매장 등이 있다.

시애틀=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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