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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가짜 뉴스보다 더 위험한 가짜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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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선전선동은 잘못된 정치의 트레이드 마크다. 나치 정권의 괴벨스는 “거짓말도 자꾸 들으면 믿는다”고 했다. 북한 정권은 지상낙원의 몽환적 선전 속에 헤맨다. 어쩌면 ‘공상허언증’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한 거짓말을 스스로 진짜인 양 믿는 현상 말이다.

적당히 포장한 눈속임 정책은 또 다른 가짜뉴스 #실현 가능한 진짜 정책으로 국민 신뢰 얻어내야

가짜뉴스도 같은 범주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그 위력은 엄청났다. 클린턴 후보가 테러조직인 IS와 연계돼 있다느니, 교황이 트럼프 지지 선언을 했다는 따위다. 얼마나 잘 포장했는지 가짜뉴스에 휘둘린 언론사도 있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의 심리를 타고 진실로 포장돼 퍼졌다. 그 대단한 위세로 인해 국론이 분열될 지경에 이르렀다. 대선을 앞둔 프랑스를 비롯해 다른 나라도 가짜 홍수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오죽하면 전 세계 37개 언론사가 ‘크로스체크’라는 가짜뉴스 대응조직을 만들었겠는가.

한데 얼마 전 정부 정책에 가짜 기미가 보여 의아해한 적이 있다. 이른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라는 정책이다. 내수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내놨다. 월~목요일 30분 더 일하고, 금요일에 두 시간 일찍 퇴근한다는 것이다. 이게 정말 실현 가능할까. 눈치 보기가 만연한 근로환경을 따지기 전에 근로기준법을 보자. 제50조 제2항은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그 이상 일하면 무조건 연장근로수당(통상임금의 50%)을 줘야 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일주일에 두 시간분의 수당을 더 주고, 금요일엔 일찍 퇴근시켜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인건비만 불어나는 셈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가 “실현 가능성 제로”라고 단언한 이유다.

이런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부랴부랴 해명자료를 냈다. 요지는 이렇다. ‘법에 명시된 선택·탄력근로제를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프리미엄 프라이데이’가 “사실은 탄력근로제”라는 자기 고백이다. 원래 있는 정책에 포장만 그럴싸하게 해서 국민경제대책이라고 내놨다는 말이다. 뉴스의 형태를 빌린 가짜기사와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

더욱이 정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탄력근로가 시행되려면 노사가 합의해 취업규칙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취업규칙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가. 저성과자 해고나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을 두고 빚어진 노사 갈등은 산업현장에 유·무형의 엄청난 손실을 안겼다. 탄력근로도 마찬가지다. 연장근로수당이 덤으로 생기는데, 그걸 포기하고 취업규칙을 바꾸면서까지 탄력근로를 도입하려는 노조가 있을까. 이를 정부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인지 정부 해명자료에도 생긴 지 20년이 넘었는데 왜 탄력근로제가 활성화되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 쏙 빠졌다.

정부 정책이 이런 식이면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엔 이런 일도 있었다. ‘공공기관의 소속 외 근로자(협력업체나 하청업체 근로자)가 늘어났다. 공공기관이 비정규직 꼼수를 부린다’는 보도가 나오자 정부가 반박자료를 냈다. “소속 외 근로자가 증가한 건 공공서비스 강화에 따른 사업 확장,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인력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얘기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행 중인 고용형태공시제와 관련해서다. 무려 4년 동안 기업은 비슷한 하소연을 했다. 예컨대 네트워크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 보안솔루션업체에 일을 맡기면 기업은 이들을 소속 외 근로자로 계산해 공표해야 한다. 해당 회사는 뜻하지 않게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것처럼 비춰진다.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정부는 그동안 이런 착시효과에 묵묵부답이었다. 한데 정부가 같은 이유로 지적당하자 기업의 하소연과 똑같은 해명을 하며 착시효과를 주장하니 어이가 없다.

이런 유의 정책은 가짜뉴스와 같다고 할 수는 없어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국민과 정부 간의 신뢰를 깨기 때문이다. 굳이 ‘크로스체크’라는 단체를 만들지 않아도 눈가림 정책 정도는 가려낼 정도로 국민은 똑똑하다. 진실의 그물망을 적당한 포장으로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안 그래도 국민은 꼼수와의 전쟁에 너무 지쳐 있다.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