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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고고학 박사 … 그 아버지에 그 딸답네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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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승중 교수는 “아버지(도올 김용옥)에게 ‘학문의 폭’을 넓히는 학자의 자세를 배웠다”고 했다. [사진 통나무]

김승중 교수는 “아버지(도올 김용옥)에게 ‘학문의 폭’을 넓히는 학자의 자세를 배웠다”고 했다. [사진 통나무]

“동양인으로서 서양 문화의 근간인 고대 그리스 문명을 연구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그 ‘낯섦’이 탐구 정신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서양 학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실을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요.”

김승중 토론토대 교수 인터뷰 #프린스턴대·컬럼비아대서 학위 #“새 분야 도전 자세 아버지에게 배워” #『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 펴내

김승중(44) 캐나다 토론토대 고미술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감성으로 그리스 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다. 역사를 곧바로 기술하기보다 그에 상응하는 신화를 만들어 상징적으로 표현하려했던 그리스 문화의 특징을 꼽으며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희랍 고전시대에 살았다면 아버지 박정희라는 역사적 개인의 동상을 세울 생각을 하는 대신 박정희를 상징하는 추상적 신화심볼을 남기려 했을 것”이라고 곱씹어내는 식이다. 이러한 통찰을 엮어 최근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통나무)을 펴낸 그를 지난 3일 전화 인터뷰했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와 최영애 전 연세대 중문과 교수의 1남2녀 중 맏딸로 태어나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우주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후과정까지 마친 뒤 2003년 돌연 전공을 바꿔 버지니아대에서 예술사 공부를 시작했다. “하늘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공허한 느낌이 든다. 이제는 땅의 역사,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천문학은 거리상 멀리 떨어져있는 대상을, 고고학은 시간상 멀리 떨어져있는 대상을 관측하고 데이터를 모아 분석·연구한다는 점에서 구조가 비슷한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 목말을 타고 있는 어린 시절 김승중 교수. [사진 통나무]

아버지 목말을 타고 있는 어린 시절 김승중 교수. [사진 통나무]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단 한 치의 책망도 없이 진심으로 기뻐하고 격려해주셨다”면서 “잘 아는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학문의 태도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던 그의 아버지 역시 1990년 원광대에 입학해 한의학을 공부한 바 있다. 그는 아버지와 탄탄한 학문적 동지 사이다. 도올은 딸의 책 말미에 서설을 붙이며 “승중이의 글은 희랍 문명사를 철학사의 좁은 인식의 지평에서 벗어나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줬다”고 적었다.

그는 2014년 컬럼비아대에서 고대 그리스의 시간 개념에 대한 연구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땄고, 학위 논문 완성 직전인 2013년 토론토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고대 그리스 문명과 현재 한국 사회의 공통점을 여럿 꼽았다. “다신교의 전통, 환대를 중요시하는 풍습, 치열한 교육열, 즉흥시와 풍류를 즐기는 상류층의 관습,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고방식 등이 꼭 닮았다”는 것이다. 또 매주 토요일 서울 도심에서 열리고 있는 대통령 탄핵촉구 촛불집회에서도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읽어냈다. “근대적 민주주의가 미국 독립선언과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정착된 이래 처음 국제사회에 등장한 직접민주주의의 한 장면”이라며 “그 과정이 질서정연한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기존의 어떠한 혁명의 가치를 뛰어넘는다”고 짚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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