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미전실’ 해체 여파, 채용시장 지각 변동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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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이현정(24·여)씨는 요즘 부쩍 뉴스 검색을 많이 한다. 삼성전자 입사가 목표인 그는 최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해체 소식에 불안감이 심해졌다. 이씨는 “취업준비생들 사이에 삼성이 상반기에 그룹 차원에서 대규모 공채를 실시할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다”며 “그룹 공채를 실시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삼성 외에 다른 그룹들도 채용을 확정 짓지 않거나 규모를 줄이는 추세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상반기 공채 예년처럼 진행한 뒤 #하반기부터 계열사별 채용 전망 #규모 줄이고 경력직원 우대할 듯 #다른 대기업도 방식 바꿀 가능성

삼성의 미전실 해체가 채용 시장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미전실 인사지원팀이 주도하던 그룹 차원의 신입사원 공채 절차가 없어지면 각 계열사가 자체적으로 필요 인력을 뽑게 된다. 그럴 경우 ▶그룹 차원의 공채에 비해 채용 규모가 다소 줄어들고 ▶공개 채용 보다 수시 채용 비중이 더 높아지며 ▶신입 보다 경력 채용이 더 늘어갈 거란 게 채용 시장의 관측이다. 특히 국내 채용 방식과 규모의 기준이 돼온 삼성이 새로운 길을 택한 만큼 다른 대기업 그룹의 채용 방식에도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다.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조사 자료: 잡코리아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조사 자료: 잡코리아

삼성의 상반기 공채는 일단 예년처럼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삼성 안팎의 전망이다. 미전실 인사지원팀은 이미 지난해 연말 ‘2017년 3월 공고, 4월 직무적성검사(GSAT) 실시’를 목표로 채용 일정을 짜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한 계열사 관계자는 “미전실은 해체됐지만 이미 각 계열사가 올해 채용 일정의 큰 그림은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같은 시기에 채용 공고를 내고, GSAT를 함께 실시하되 면접이나 합격자 발표는 각자 진행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미전실이 없는 상황에서 모든 계열사가 일사분란하게 채용 공고를 내는 것은 외부에 이상하게 비춰질 가능성 때문에 조심스러워하는 기류가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쇄신안에서 자율경영을 강조한만큼 하반기부터는 각 계열사가 필요한 인력을 원하는 시기에 뽑는 ‘각자도생 채용’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그룹 단위의 채용에서는 상·하반기 예상 필요 인력을 미리 취합해 각 계열사에 채용 인원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내는 식으로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사회공헌 이미지 등을 위해 채용 규모를 가급적 전년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변지성 잡코리아 홍보팀장은 “그룹 공채가 계열사 자율로 바뀌면 전체 규모는 줄어들 게 확실시된다”며 “갈수록 공채 규모를 밝히지 않는 그룹이 늘고 있는 것도 경기는 안 좋은데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압박이 매우 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조사 자료: 잡코리아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조사 자료: 잡코리아

이런 전망은 가뜩이나 움츠러든 취업 시장에 큰 충격이다. 잡코리아가 최근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4.6%는 “상반기에 사람을 안 뽑는다”고, 21.2%는 “뽑을지 안 뽑을지 못 정했다”고 답했다. 계획을 정한 기업의 채용 규모도 8465명으로 지난해 상반기(9276명)에 비해 8.8% 줄었다. 서미영 인크루트 상무는 “삼성의 채용 공고 자체가 취업 시장에서는 ‘대목의 시작’을 알리는 기준점 역할을 했다”며 “삼성이 지금까지 구체적인 상반기 채용 계획을 밝히지 않으면서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크게 위축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취업 준비생들이 공채 시스템의 변화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삼성 그룹의 채용 일정과 방식 변화에 따라 다른 기업들도 그룹별 공채가 아닌 계열사별 공채를 실시하게 될 가능성이 커서다. 특히 기업의 브랜드나 위상에 연연하기보다 경력을 키워나갈 산업과 직종을 구체적으로 정해 맞춤형 대비를 하라는 조언이 많았다.

서미영 상무는 “삼성의 신입사원이 되겠다는 꿈보다 가전업체에 들어가 제품 개발을 하고 싶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격 확률이 높다”며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구조가 크게 바뀌는 만큼 당장은 규모가 작아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을 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대기업에서는 갈수록 수시 채용, 경력 채용이 확산하는 분위기”라며 “처음부터 대기업을 택하는 것보다 본인이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중소·중견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대기업 입사를 노리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임미진·이현택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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