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노린 가짜 환자 '사기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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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997년 싱크대 판매.설치업에 종사했던 김모(50)씨는 지병인 만성간염이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6개의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보험 상품은 "8대 성인병으로 입원할 경우 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보험에 가입한 뒤 영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노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중 주변 사람에게서 "인근의 B내과병원이 가벼운 질환에 대해 장기간 입원을 허락하고, 외박.외출이 자유롭다"는 말을 듣게 됐다. 곧바로 찾아간 B병원의 원장 조모씨는 "간경화나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으니 빨리 입원하라. 입원 치료를 해야 링거 주사를 맞을 수 있다"며 입원을 권유했다. 이후 김씨는 2002년까지 11차례에 걸쳐 매회 수십 일씩 입원했다. 대개 오전에 병원에 가 주사를 맞고는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입원 기간 중 점포에 나가 싱크대 배달 일을 했고, 자녀와 야외로 놀러 가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것처럼 속여 보험사로부터 70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아냈다.

추모(45.여)씨도 99~2000년 같은 병원에서 십이지장궤양 등의 이유로 70일 가까이 입원해 715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추씨는 입원 기간 중 오전에 병원에 갔다가 오후 6시쯤 귀가했다.

대법원 1부는 이처럼 입원 환자 행세를 하며 보험금을 타낸 혐의(사기)로 김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또 병원장 조씨에 대해선 "입원이 필요 없는 환자들에게 입원을 권유하거나 가짜 입원확인서를 발급해 준 사실이 인정된다"며 사기.사기 방조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정식으로 입원 수속을 밟은 뒤 고정된 병실을 배정받아 치료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병원을 오가는 이른바 '통원 치료'를 해 보험금을 받았다면 사기죄에 해당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입원이란 질병 저항력이 매우 낮거나, 의료진의 지속적 관찰이 필요한 환자가 통원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 병원에 체류하면서 치료를 받는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고시(요양 급여의 적용 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 사항)에 입원이 하루 6시간 이상 병원에 체류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들이 병원에 체류한 시간이 6시간이 넘었더라도 치료를 받은 시간은 일부분이고, 대부분 시간에 단순히 병원에 머물렀거나, 환자가 받은 치료의 내용이나 목적이 통원 치료로도 충분히 달성될 수 있는 경우에는 입원 치료가 아닌 통원 치료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병원장에 대해서도 "애당초 이들 환자의 외출을 통제하면서 경과를 관찰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유죄 이유를 설명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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