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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외교·안보 아우른 한·미 동맹 업그레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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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는 2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랍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3일 오전 5시(한국시간)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공식 발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오전 외교통상부 주최로 열린 '한.미 FTA 추진 공청회'는 개막 직후부터 농민단체 등의 항의 시위 등이 이어지면서 무산됐다. 한.미 협상 개시를 계기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FTA의 국내외 정치적 파장과 효과를 짚어 본다.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희망하는 20여 개국 중 한국을 파트너로 꼽았다는 건 동북아에서 지주국가(stake)로서의 역할 등을 고려한 것 같다" "무엇보다 한.미 동맹의 공고화라는 상징적 효과가 크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FTA 협상 개시에 이런 의미를 부여했다. 경제적 실리를 넘는 국제정치적 전략으로서 의미가 크다는 얘기다.

미국 측 시각도 같다. 에드워드 그레이엄 국제경제연구소(IIE) 연구위원은 "한.미 FTA는 주한미군 문제 등을 놓고 다소 껄끄러웠던 한.미 관계를 풀어줄 해법"이라고 말했다. FTA가 한.미 동맹의 접착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그동안 미국과의 FTA를 희망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신년연설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미국과도 FTA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간 이해의 일치가 협상 개시를 낳은 셈이다.

다만 한.미 FTA는 국내에선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산업 간 이해가 갈려 있는 데다 외교정책의 중심이 미국 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이념의 갈등이 깊어지거나 이해 관계의 충돌도 예상된다.

동북아 정세에도 미묘한 흐름을 조성할 수 있다. 중국을 견제한다는 인상을 풍기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해 3월 민간 차원의 FTA 공동연구에 착수했다.

반면 미국으로선 전략적 요충이자 동맹국인 한국을 중국이 선점하는 상황을 반길 리 없다. 부시 대통령은 1일 국정연설을 통해 '중국 위협론'을 내비쳤다. 유현석 경희대 교수는 "이번 FTA 협상 개시를 통해 미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경제권에 한국이 편입되는 것을 견제하고, 한국은 한반도 안보 불안이 해소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FTA를 세계 전략의 첨병으로 활용해왔다. 중동 지역 안정화를 위해 이 지역 국가와의 FTA 체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게 한 예다.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UAE)가 연방평의회 의원을 선거로 뽑기로 한 데는 미국이 민주주의를 시작하면 FTA를 체결하겠다는 입장을 전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미 무역대표부(USTR)의 웹사이트에는 FTA 정책 목표가 '아시아.중동.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전략적(strategic).경제적 이득을 높이기 위해…'라고 나와 있을 정도다.

FTA의 국제정치적 가치가 커지고 있는 건 세계적 추세다. 인하대 정인교 교수는 "FTA를 통한 경제 동맹 관계 형성이 점점 과거 냉전 시대의 이념적 동맹 관계를 대체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미 FTA 협상 개시는 중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두 나라는 FTA를 매개로 보이지 않는 패권 다툼을 하는 중이다.

중국은 홍콩.마카오에 이어 2004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상품분야 FTA 협정을 체결했다. 아세안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을 네트워크화해 이 지역의 리더로 발돋움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자 일본은 바빠졌다.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은 지난달 4일 인도를 방문해 FTA 체결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두 나라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일본은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과도 FTA를 추진할 계획이다. 자원 확보 외에 미국의 대중동정책을 측면 지원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학계 일각에선 이런 흐름을 감안해 한.미 FTA 협상을 계기로 대중국.대일본 FTA 전략을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림국제대학원대학 최태욱 교수는 "한.미.일 동맹을 가속화하는 한미 FTA가 중국 소외현상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계는 지금 FTA 전쟁 중이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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