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업자에 세주면 다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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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 루이뷔통 가방은 '짝퉁'입니다."

세관 단속 창고에 붙일 안내문이 아니다. 앞으로는 미국의 뉴욕 거리에서 이런 포스터를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LVMH(루이뷔통 등을 소유한 세계 최대 명품 회사)를 비롯한 세계적인 명품 업체들이 뉴욕 캐널 스트리트의 건물 소유주 7명과 '짝퉁'(가짜, 모조품) 근절에 노력한다는 협약을 체결했다고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AWSJ)이 2일 보도했다.

캐널 스트리트는 뉴욕 차이나타운과 리틀 이탈리아의 사이에 있는 쇼핑가로 짝퉁이 판을 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 건물 주인들은 임대 가게 곳곳에 "여기는 루이뷔통 판매를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곳이 아닙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짝퉁'을 팔다 적발된 가게는 내쫓기로 약속했다.

그동안 LVMH.버버리.구치.프라다 등 명품 업체들은 '짝퉁'과의 지겨운 전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최근 '짝퉁' 제조 조직이 국제화되면서 이들을 적발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그래서 이번에 '짝퉁'을 파는 가게에 세를 주고 있는 건물주들을 압박하기로 한 것이다. 설사 합법적인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짝퉁'유통이라는 범죄 행위를 간접적으로 도와준 것이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LVMH의 지적재산권 보호 담당자 나탈리 물레 베르토는 "'짝퉁' 유통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면 무조건 소송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짝퉁'을 판매하는 가게는 영세하기 때문에 적발해도 큰 효과가 없다. 2004년 뉴욕 법원은 가짜 루이뷔통과 펜디 액세서리를 판 소매 상인 29명에게 4억6400만 달러(약4640억원)의 벌금을 물렸지만 대부분이 영세업자라 거액의 벌금을 낼 수 없었다. 이에 따라 LVMH는 이들에게 판매 공간을 내준 건물주에게 책임을 물리기로 했다. LVMH의 소송 대리인 스티븐 키멜먼 변호사는 "상인들에게선 돈을 받을 엄두도 못 냈고, 대신 건물주를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총 11개 빌딩을 소유한 건물주 2명과도 협약을 맺었다. 이 건물주들은 '짝퉁' 단속반 활동에 대한 재정지원에도 동의했다.

명품 업체들은 다음 목표로 운송회사와 카드회사를 겨냥하고 있다. 건물주들과 마찬가지로 위조품을 운반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위조품 구매 결제를 도와주는 것도 범죄행위라는 주장이다.

키멜먼 변호사는 "뉴욕에서 건물주들이 책임을 지는 판례가 쌓여 앞으로는 제3자에게도 '짝퉁' 유통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소송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카르티에, 보메 메르시에, 바셰론 콘스탄틴 등 고급 시계 브랜드를 소유한 리슈몽 그룹은 이미 '짝퉁' 시계를 실어나른 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했다. 2003년 뉴욕 법원은 33개 운송회사에 '짝퉁'운반으로 인한 5억9400만달러 규모의 피해 보상금을 리슈몽 그룹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

리슈몽 그룹의 법률 대리인 할리 르윈 변호사는 "아시아.미국.유럽에 걸쳐 있는 '짝퉁' 조직이 특급 운송이나 우편 상자의 소인을 통해 노출됐다"며 "몇 개 운송회사에 이미 소환장을 발부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짝퉁'을 사는 사람도 처벌 대상이 된다. 프랑스.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여름 '짝퉁'을 사는 사람에게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짝퉁'을 사다 적발되면 최고 3년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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