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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곤의동물병원25시] '액세서리' 강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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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전자제품들을 보면 점점 더 작고 예쁘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성능도 끝내준다. 그 작은 몸집에 있어야할 기능은 다 있으니 말이다. 손가락으로 가려질 만큼 얇고 디자인도 아름다운 휴대전화나 디지털 카메라를 보면 나도 하나쯤은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사람들이 작은 전자 제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항상 가까이 두고 즐기기에 편하다는 장점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작고 예쁜 것에 대한 욕구를 동물병원에서도 자주 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생후 2개월쯤 돼보이는 말티스 품종의 강아지 한 마리가 내원을 했다.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로 보호자의 품에 안겨온 강아지는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아주 나빠 보였다. 보통 이런 경우는 구토와 설사로 탈수가 진행돼 내원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구토나 설사 등의 증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입양된 지 일주일째였고 밥도 잘 먹고 아무런 증상도 없는데 서서히 말라가고 약해져 갔다는 것이었다. 이때는 내가 인턴 수의사 시절이라 도저히 진료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선배 수의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상황을 이야기하니 너무나 간단히 먹이의 양을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는 강아지를 적게 키우기 위해 먹이의 양을 적게 주기 때문에 생긴 영양실조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선배의 조언대로 보호자에게 물었다. 대답은 두 알! 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사료 두 알이란다. 그것도 한 끼에 2알이 아니라 하루에 두 알. 입양 해오고 일주일 동안 그 불쌍한 강아지는 먹이를 하루에 두 알씩 먹어 오면서 서서히 약해졌던 것이다. 보호자에게 그렇게 적게 먹이를 주는 이유를 물었다. 강아지에게 먹이를 적게 주면 작게, 아주 작게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공급해 주지 않으면 작게 자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 일단 강아지가 항상 배가 고프니 성격이 나빠진다. 스트레스 때문에 예민해지고 뭔가 먹을 것만 보이면 닥치는 대로 먹어댄다. 심지어는 먹지 말아야 할 것들과 자신의 응가까지 먹어댄다. 영양이 부족하니 몸의 저항력이 떨어져 질병에 걸리기도 쉬워진다.

작은 강아지를 원하는 사람 중에는 또 이런 사람들도 있다. 성견이 되어도 작은 품종이라는 판매자의 말에 혹해 강아지를 입양했다가 생각보다 커진 개에 실망해 어디론가 보내 버리고 또 다른 작게 큰다는 어린 강아지를 입양하는 사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강아지를 바꾸는 것 같다.

요즈음 티컵 강아지가 인기라고 한다. 성견이 되어도 크기가 찻잔에 들어갈 만큼 작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물론 작은 강아지가 귀엽고 예쁘다. 적게 먹고 적게 싸고 타인의 관심과 부러움을 받을 수 있으니 좋다. 하지만 사람의 이기심 때문에 적게 먹이고 크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버리거나 다른 곳에 보내버리는 것은 또 다른 동물 학대가 아닐까.

박대곤 수 동물병원장 (www.petclin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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