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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신현림의 매혹적인 시와 사진 이야기 #15. 더 행복해지려고 애쓰고 있어요

중앙일보

입력


<YOUTH : 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 리게네 디크스트라, 트리네 쇤더고르, 조 레너드

더 행복해지려고 애쓰고 있어요. 더 행복해지려고 안전한 직장을 관두고 더 행복해지려고 커피를 타고 커피 속에 눈과 비도 넣어보고요... 나는 더 행복해지려고 메모하였다. 나는 더 행복해지려고, 스물일곱 살에 읽은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를 보았다. “아름다운 늙은 여자,”란 대목이 눈에 들었다. 늙어서 더 아름다운 여자들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생각하는 미인은 고달픈 가사 노동 속에서도 늘 배우고 늘 탐구하는 여자였다. 지금도 내게 미인은 똑같은 뜻이다. 작가들도 끝없이 탐구하는 이가 좋고, 끝없이 눈물겹게 애쓰는 사람이 좋다. 그렇다고 매일 눈물을 흘리라는 뜻은 아니다. 어쨌든 배우고 탐구하는 자를 나는 선수라 부른다.

수 없는 세월 속에서 여성들은 가사노동으로 파묻혀 자기 능력을 키우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버지니아 울프 <나만의 방>에도 나오는 얘기다. 자기 자신이 누구일까 물을 새도 없이 남성 권위주의가 만든 여성상이 당연한 줄 알고 살다 갔다. 여성 역시 남성의 세계를 재작년 드라마 <미생>을 통해 간신히 알았을지 모른다. 전업 작가인 나 자신도 글, 사진 찍고, 독서와 자식 양육까지 슈퍼우먼의 고달픔을 넘어서려 애쓴다. 간간이 내게 통풍구가 되어주는 것이 영화 관람과 전시장 가는 일이다. 최근에 나는 소녀 친구와 함께 사진전 <YOUTH : 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를 같이 보았다. 보는 내내 이 나이에 무얼 했지? 나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몽롱하게 살던 나의 청소년 시절과 달리 질러버리는 청춘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해보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해보려는 청춘의 열병 든 친구들이 아름다웠다. 생각과 따로 노는 몸이 아니라,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는 친구들을 촬영한 작가들도 행복했을 것이다. 이 전시와 어울릴만한 젊은 시인 신철규의 매력적인 시 “유빙(流氷)”의 부분을 읊으며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다.

당신은 시계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커피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이 시에는 청춘의 대표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시구가 있다. 비유도 멋진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에서 포기 못 할 마음이다. 하지만 한국의 우리 시대는 7포세대란 말이 젊은 청춘의 상징이니 우울하고 슬프다. 나는 소녀 친구에게 젊은 애들이 줄을 서서 보는 이 사진전을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작품이 대단하다기보다 커다란 전시장의 코디를 흥미롭게 했고, 사진을 통해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은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대리만족하고 부러워하는 게 아닐까 싶어.“

친구의 대답은 우리도 얼마든 저렇게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데, 국가에서 막을 걸, 하며 마무리를 짓길래 웃음이 나왔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여자가 살기에는 피로한 나라임을 청소년 애들도 희망 없이 말하였다. 여성 알몸 사진들은 자유와 행복의 상징으로 읽히니 시원하면서도 씁쓸하였다.
어쨌든 더 행복해지기 위해 죽도록 공부하고 탐구하자. 추구하는 자에겐 현실의 고달픔보다 배운다는 기쁨이 큰 법이다.

리게네 디크스트라(1959년생, 네덜란드). 그녀의 주제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기에 그들 얼굴과 신체에 나타난 불안정함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들은 그들만의 비밀을 가진다. 그녀가 찍은 사람들(10대, 젊은 투우사, 막 출산한 여성까지)은 변화(과도기) 단계에 있는 상처받기 쉽고 민감한 개인들이다. 그들 상황은 불확실성, 자세, 옷 그들 피부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덴마크의 트리네 쇤더고르의 작품은 외설적인 순간을 담는 게 아니다. 고객과 함께 있거나 중앙역 주변에 쉬는 매춘부라는 비인간적인 직업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살아남는지 2년간 탐색했다. 이런 모습을 찍는 그녀도 대단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는 유럽의 분위기도 대단하다.

나는 더 행복해지려고 매일 음악을 듣는다. 지금은 이범용, 한명훈이 부르는 <꿈의 대화>, 스콘 메켄지의 샌프란시스코, 방탄소년단, 재즈, 클래식 바하 등 가리지 않고 유튜브 속을 떠돈다. 노래를 들으며 일하면 인생이 기쁘다. 몸 움직임도 훨씬 가볍다. 이렇게 노래를 매일 듣는 세상이라면 많은 범죄가 줄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는 행복해지려 애쓰고, 또한 그걸 나누려고 애쓰는 것 또한 사랑하며 사는 일이다.

그들은 당신을 비좁은 관 속에 가두고
쾅쾅 못질을 했다.
하고많은 사연 빼곡히 담긴 편지를
누렇고 거친 봉투에 집어넣듯

빨간 우체통에 던져 넣은 편지 한 통처럼
그들은 당신을 화장터 뜨거운 불구덩이에 쑤셔 넣었다.

...장님 그것은
우표를 붙이고 스탬프를 쾅 찍어
멀고 먼 어느 나라로 띄우는 편지 같은 것

지센의 <화장>이란 시처럼 죽음이 멀고 먼 어느 나라로 띄우는 편지, 라는 귀여운 느낌도 상실감을 가볍게 할 수 있으리. 우리가 하느님께 향하는 길을 슬퍼만 할 시간이 없다. 자살은 왜 하냐, 라고 물을 때 멀리 또 한 사람이 목매달아 죽은 사진이 보인다. 조 레너드(Zoe Leonard, 1961년생, 미국)의 사진이다.

여기에 소개한 그녀의 사진들.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한 사람이 나무에 목매달아 죽은 모습이다. 이것을 무섭다 말하지 말라. 이 무서움조차 우리가 사랑해야 할 존재의 한 모습이니까. 찬찬히 보면 왠지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그녀는 자신 안에서 녹아들고 서로 맞서는 극과 극 사이에서 존재한다.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서 그녀는 소외된 집단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헌신적이다. 그녀는 잘 알려진 작품 중의 하나인 포스터 <나의 입술을 읽으세요>를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닫히기 전에 나의 입술을 읽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여성의 질이 그려져 있다. 이 문장은 미국 의사들이 ‘낙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법이 금한 것을 암시한다. 그림 한가운데 레즈비언 페미니스트가 여봐란듯이 질을 보여주지만 분명하게 감정은 없다는 사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한다.

‘누가 여성의 신체와 여성의 사진을 조절해 왔는가?’
‘동성애적인 주제에 대한 검열로 이룬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여성의 성적인 기관이 성적 효과 없이 나타내질 수 있는가?’

우리가 심각하게, 인상 찌푸리며 찬찬히 생각해볼 대목이다. 그녀의 사진에 정치적 행동주의 언어와 어딘가 쓸쓸한 시적 분위기의 감각적 색조가 잘 섞여 있다. 사진 어딘가 그 쓸쓸한 느낌이 가슴을 콱 막히게 하면서 ‘이게 인생이야!’ 하는 뇌까림이 가늘게 터져 나온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절망이나 죽음과 철저히 대면해 살고자 하는 마음은 삶의 엑기스를 건져 올린다.
삶이 죽고 싶을 만큼 고단해도 불평을 하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다. 오래전에 신문에서 읽은 칠레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인터뷰 기사 중에 한 대목이 깊이 와 닿는다. 그녀는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 그 영향이 지대했다고 한다. 그 할아버지 생전의 말씀 중에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금언은 “불평하지 말아라”였다는데… 그만큼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고, 불평하기보다 매 순간 감사해야 할 만큼 삶이 귀하다는 얘기다. 스피노자도 이런 말을 했다.

“야유하지 말고, 한탄하지 말며, 악담하지 말라.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이것이 더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임을 안다. 생활에서 자잘하게, 혹은 갑작스러운 사건이나 고통으로 괴로울 때 그 의미를 묻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괴로움 너머에 해가 뜨리라. 난로처럼 뜨끈뜨끈한 해가.

작가소개
시인. 사진가. 미대 디자인과 수학, 국문학과와 디자인대학원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작가로 다양한 매니아층이 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냈다.
영상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신현림의 미술에서 읽은 시』
힐링에세이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 『서른, 나에게로 돌아간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세계시 모음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1, 2권 『사랑은 시처럼 온다』 등
동시집으로 초등 교과서에 동시가 실린 『초코파이 자전거』 『옛 그림과 뛰노는 동시 놀이터』 『세계 명화와 뛰노는 동시 놀이터』와
역서로는 『예술가들에게 슬쩍한 크리에이티브 킷 59』 『Love That Dog』 등이 있다.

사진가로 사진가로는 낯설고,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삶의 관점을 보여준 첫 전시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전 이래 사과 이미지를 통해 '존재의 성찰'을 펼쳐, 세 번째 사진전 <사과밭 사진관>으로 2012년 울산국제사진페스티벌 한국 대표 작가 4명중에 선정된 바 있다. 4번째 사진전 <사과여행>사진집은 일본 교토 게이분샤 서점과 갤러리에 채택되어 선보이고 있다

최근 <사과, 날다- 사과여행 #2>전을 열고, 사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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