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공백이 걱정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치적 전환기를 맞아 요즘 공무원들의 기강이 말이 아닌 모양이다. 당연히 처리해야 할 민원을 제때에 제대로 해주지 않고 골치아픈 일은 되도록이면 손을 대지않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그린벨트가 야금야금 침범되고 산림훼손과 무허가 주택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인·허가 업무등 이권을 둘러싼 공무원들의 부정과 비리가 늘고 자리를 비우는일이 잦고 당·숙직등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정권교체기가 가까와지면 권력의 누수현상이 빚어지게 마련이지만 행정마저 이모양이라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만 해도 지난9월부터 각구청 국장들이 상오에만 자리에 붙어있고, 하오부터는 「주민과의 대화」를 가진다며 자리를 비워 각종 민원과 결재서류가 수북이 쌓여있다고도 한다.
공무원이 선거에 왜 그렇게 관심이 큰지 모르나 평소 두절됐던 대화를 느닷없이 갖는것도 어색해 보인다.
윗자리에 있는 공무원이 그러면 하위직 공무원들 역시 들뜨고 근무자세가 이완되게 마련이다. 창의력이라고는 찾아 볼수없고 일을 찾고 발굴하기는 커녕 마냥 소극적이고 무사안일에 적당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평소에 그처럼 요란하던 단속도 잠잠하고 범죄예방에도 신경을 쓰는것 같지 않다.
그저께 일어난 강간전과범의 연쇄살인 사건도 그렇다. 불과 몇시간 사이에 길거리에서 두생명을 무참히 살해했는데도 경찰은 무얼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추석방범 비상력속에 그많은 방범대원과 경찰은 어디에 있었는가.
더구나 문제의 범인은 지난8월 출소후 지난달 29일에도 임산부를 폭행하려다 살해한 수배중인 1급 살인범이었다. 평소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소지가 다분히 있는 정신질환자를 출소시켜 무방비상태로 버려둔 행형상의 문제점도 크지만 똑같은 수법으로 사람을 세명씩이나 죽일수 있는 범죄환경도 여간 개탄스럽지 않다.
모두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무책임의 소산이다. 행정은 일관성과 효율성, 안정성을 최고 원리로 삼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중립과 신분보장을 핵으로하는 직업공무원제가 요구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적 전환기라하여 행정이 일관성을 잃고 행정 공백상태를 보인다면 그 행정은 존재할 필요가 있겠는가. 정권의 향방이나 추이에만 관심을 두고 눈치만 살피는 행정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제 실시를 앞두고 특히 시·도지사등 각급지방 기관장들의 보신과기회주의가 두드러 진다고 한다. 얼마전에 경기도 광주군수를비롯한 20명의 공무원이 그린벨트훼손을 눈감아주다 몽땅 직위해제 되기도 했지만 이게 모두 행정 기강의 이완 탓이다. 정부는다른걸 제쳐두고라도 공무원들의 기강부터 확립하길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