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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경제특강] “상위 10% 특권 내려놔 불평등 줄이자”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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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부른 불평등, 위기의 한국경제 해결책은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을 만나다

세계 7위의 경제대국 그러나 대한민국 청년과 소외계층은 ‘헬조선’을 말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진보적 경제학자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상위 10%가 부의 절반을 차지하는 불평등 구조를 바꾸기 위해 기득권층의 특권 내려놓기가 필요하지만 여야 정치권이 이들 여론주도층을 의식해 개혁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임대수입에 과세하고 과도한 집값, 교육비 등을 잡지 못하면 성장동력마저 상실해 아르헨티나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지난 21일 중앙일보사 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 소장의 강연회에 7명의 TONG청소년기자들이 참여해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1020세대의 고민을 나눴다. 2회로 나눠 싣는다. 1회는 강연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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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미래는 아르헨티나?

한국경제의 성과는 대단하다. 1953년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였다. 지금은 2015년 기준으로 2만 7000달러. GDP(국내총생산) 세계 11위, 수출규모 6위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인구 5000만 이상 국가로 치면 7위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영국, 이탈리아 다음이다. 스페인도 인구가 3500만이고 호주도 스스로 ‘스몰 컨트리’라고 부른다. 땅은 크지만 사람은 2000만 정도. 남북통일이 되면 8000만으로 독일과 비슷하다. 살기 좋은 나라라 자부심 가질 만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젊은이들은 불안해하고 힘들어 한다. 일자리 문제, 흙수저-금수저 논란, 자칫하면 중산층 내려갈 위기, 살인적 집값…. 앞으로는 어떨까.

한국경제는 갈림길에 있다. 미래에 어두울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미래는 결정돼 있지 않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 따라 다를 것이다. 정조가 1800년대 죽고 50년 정도 경제가 나빠지면서 조선이 망해 갔는데 지금과 상황이 비슷하다. 어떤 이는 일본을 뒤따라 장기침체할 거라 말하는데 그건 오히려 희망적인 얘기다. 일본은 이룬 게 훨씬 많은 나라다. 95년에 이미 4만 달러가 넘었다. 복지, 사회인프라가 잘 돼 있고 소득불평등도 적다. 부동산 거품이 꺼져 현재 집값이 우리보다 싸다. 금융자산이 축적돼 있고 노후 준비도 잘 돼 있다.

한국은 이대로 가면 일본과 아르헨티나 중간쯤 될 것 같다. 아르헨티나가 옛날에 어떻게 살았는지 아나? 통계는 없지만 소설을 보면 경제상황을 알 수 있다. 소설 ‘엄마 찾아 삼만리’가 1903년에 나왔다. 이탈리아 제노바에 사는 13살 마르코의 엄마가 집안이 어려워져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떠난 이야기다. 당시 유럽의 못 사는 나라 주부들이 부자 나라 아르헨티나로 가정부를 하러 갔다. 우리도 잘못하면 아르헨티나가 된다.

일본이 95년 이후 정체돼 있어 우리가 따라잡을 수도 있지만 지금이 ‘한국이 가장 잘 살았던 시기’가 될 수도 있다. 경제를 끌고 가는 두 요인, 물건을 생산하는 능력과 소비하는 능력 두 가지가 다 악화되고 있어서다. 잠재 GDP를 결정하는 요인인 노동과 자본 생산성 다 나쁘고 고령화와 소득불평등으로 수요도 나빠지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필요한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60~70년대는 일을 많이 하고 차관을 들여오거나 저축을 많이 해 자본을 늘리면 성장이 쉬웠다. 그 뒤엔 좋은 기술을 도입하거나 좋은 경영기법, 금융기법을 가져오면 됐다. 세 번째 단계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이 이뤄지는 건데 이게 미흡하다. 이건 불평등 문제와 연관돼 있다. 불평등이 해소돼야 국민들 기분이 좋아지고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성장을 막는 불평등 구조의 특징과 원인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있다. 노동자가 가져가는 노동소득분배가 기업이 가져가는 자본소득분배보다 많을수록 불평등이 적다. 지니계수가 1이면 아주 불평등하고 0이면 완전 평등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2014년 지니계수는 0.302로 OECD 가입국 중간이다. 하지만 부실한 조세 제도와 기초 통계의 부족 등으로 국민들의 체감 불평등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픽=양리혜 기자]

[그래픽=양리혜 기자]

그래서 피케티 방식의 소득집중도 통계를 참고하고자 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쓴 『21세기 자본』은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낸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다. 소득세 자료를 분석한 결과 80년대 신자유주의 이후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주장이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가 이 방식으로 연구한 표를 보면 미국은 상위 0.1%가 7.5%를 가져가고 한국은 4.46%를 가져간다. 상위 1%는 미국이 17.45%, 한국은 13%를 가져간다. 여기까지는 미국의 소득집중도가 높다. 하지만 상위 10%에서는 미국 46%, 한국 48%로 우리가 더 높다. 세금을 안 내서 잡히지 않는 주택 임대소득까지 포함하면 48%가 아니라 52~53% 될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신자유주의 종주국 미국보다 심한 거다.

미국은 경쟁과 시장 원리로 움직인다. 달리기를 해서 등수가 높은 순서대로 가져간다. 장애가 있든 없든 (배려는 부족하지만) 어쨌든 달릴 때는 동일한 조건으로 달린다. 우리나라는 달리기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 똑같은 출발선도 아니고 누구는 다리를 묶어 달리는 식이다.

그렇다면 누가 상위 10%인가. 20세 이상 성인 재벌, 기업 경영진, 임대 사업자, 의사, 전문직, 성공한 정치인과 관료, 판검사, 교수, 금융기관과 공기업 임직원, 대기업 정규직 등을 합하면 370~380만 명쯤 될 거다.

우리나라는 주택 임대소득에 과세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동산 보유 세금도 적은 편이다. 국민의 꿈이 임대사업자인 나라는 비정상이다. 부동산 투자를 안 하려면 도덕적 자제심이 필요할 정도다. 중소기업이 돈 좀 벌면 전부 역세권에 작은 빌딩이라도 하나 사고 싶어 한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의사가 꼭 돈을 많이 벌어야 할까. 물론 공부를 열심히 했을 텐데 (그 이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건 의사 수가 적어서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가 2.2명(한의사 포함)인데 OECD 평균은 3.1명이다. 게다가 성형, 피부 등 질병 치료와 무관한 의사가 너무 많다. 현재 의사가 10만 명인데 5만 명은 더 늘어야 한다.

판검사, 관료, 공기업 직원은 어떤가. 이 수는 정부가 정해 준다. 일단 공무원이 되면 ‘달리기(시장 경쟁)’에서 제외다. 고위 판검사는 전관예우 등으로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받는다. 이름 올리고 사인만 하는데 굉장한 특혜다.

한국의 금융산업이 낙후돼 있다는 얘기 들어봤나? 산업은 낙후됐다는데 금융계 종사자는 월급을 많이 챙긴다. 왜? 은행이 새로 생겨나질 않아서다. 1992년을 마지막으로 20년간 은행이 안 생겼다. 제도적으로 신규 진입을 어렵게 해놔 독과점 상태인 거다. 대기업 정규직도 노조를 통해 잘 단합돼 있다. 상위 10%가 국민경제의 성과를 기여한 것 이상으로 가져간다.

나머지 90%는 어떤가. 상위 10%가 경쟁이나 시장 원리 아닌 경제 외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면 이하 90%는 비정규직, 파견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보호막이 없다. 자장면 값에 거의 변화가 없는 이유는? 옆집에서 싸게 파는데 비싸게 팔 수 없다. 경쟁이란 것 자체가 엄청난 규제다. 신자유주의적 시장 원리의 희생자들이다.

판검사나 관료는 직업안정성도 높지만 권한도 크다. 가진 사람이 또 가진다. 독일 교수는 존경받지만 월급은 적다. 박사가 교수 되려면 시험을 또 보고 논문을 내야 한다. 공고나 전문학교 나와 10년 정도 일하고 자격증 얻어 자기 업체를 운영하는 마이스터가 되면 고급차를 몬다. 소득과 명예가 분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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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완화 왜 어려운가

상위 10%는 사람들이 다양한 데다 여론주도층이다. 정치권은 표를 잃을까 개혁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각자 조금씩 문제가 있으니까 서로 탓을 돌리기가 쉽다. 재벌 탓, 국회의원 탓, 공기업 탓, 전문직 탓, 임대사업자 탓, 정규직 노동자 탓 등등.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을 주장하고 야당은 재벌개혁을 외친다.

10%가 나머지 45%의 부를 놓고 싸워야 하니까 괜찮은 일자리가 나오기 어렵다. 또 상위 10%는 법과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자리로 경제가 좋아져도 늘어나지 않는다. 교수, 교사, 공무원 수는 한정돼 있다. 기업은 대우를 잘해 줘야 하는 정규직을 잘 안 뽑는다. 정부 말대로 경제가 좋아져도 비정규직만 뽑는다. 좋은 일자리가 늘기 어려운 구조다.

주거비, 교육비 등 고비용 구조도 문제다. 직업이 좀 괜찮아도 사는 게 쉽지 않다. 소득이 좀 높아도 집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다. 집 가진 사람들은 이익을 지키는 공동체(카르텔)다. 여야 똑같다. 야당이 강하게 주장했으면 주택 임대소득 과세를 안 했을 리 없다. 우리 국민들은 보유자산의 70~80%를 부동산으로 갖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30~40%만 부동산이고 나머지 금융 자산이다.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교육비도 큰 부담이다. 우리는 사립대의 비중이 75%로 매우 높다. 등록금은 미국, 일본 다음이고 대학진학률도 78%로 높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42%, 스위스는 30%밖에 안 간다. 독일은 초등 4학년 때 인문계와 실업계를 나눈다. 4년을 지켜본 한 선생님이 결정한다. 부모들도 거부감이 별로 없다. 실업계 가도 잘 살 수 있으니까. 공부 소질 없는데 인문계 가면 고생하는 거 아니까. 오히려 부모가 왜 우리 애 인문계 보냈냐 항의하기도 한다. 우리는 의사, 교수, 관료, 판검사 되려면 좋은 대학 가고 시험 붙어야 하니 사교육에 매달린다. 미국은 좋은 일자리를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 시장에서 만드는데 우리는 정해진 자리 놓고 시험으로 싸운다. 제로섬 게임이다.

#어떤 개혁을 해야 하나

진보 학자나 시민운동가들은 신자유주의가 문제라고 한다. 과도한 경쟁, 시장 원리가 미국 같아서라고 말한다.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다. 편의점, 치킨집, 택배, 비정규직 이런 분들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교수나 판검사, 관료, 금융기관 직원이 경쟁을 하나. 진입은 어렵지만 일단 되고 나면 경쟁이 없다. 상위 10%에는 경쟁이 부족하다.

어떤 분은 규제가 너무 많고 잘못됐다고 한다. 이것도 부분적으로 맞다. 그러나 10%를 보호하는 규제는 너무 많다. 젊은이들 눈높이가 높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좋은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들의 눈높이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을 왜 하나.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하는 거다.

불공정한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미국은 경쟁을 통해 불평등이 생기지만 우리는 경쟁보다 다른 걸로 불평등이 생긴다. 미국은 달리기라도 했으니까 그래도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달리기조차 불공정하니까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다. 상위 10%에는 경쟁이 더 필요하다. 특혜를 축소해야 한다. 상위 90%에는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아동수당, 최저임금 인상 등 취약층 지원 확대는 이뤄질 거다. 그러나 특권층 개혁은 재벌 빼고 어느 정당에서도 나올 게 없다. 임대소득을 과세하겠다는 정치인이 없다. 엄청난 반발 때문이다. 취약 계층만 지원하면 잘 살까? 그랬던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그럼 누구의 특권부터 내려놓게 해야 할까. 이건 여러분이 생각해야 한다. 모두 적으로 돌리면 안 되니까 하나씩 뽑아 개혁해야 한다. 젊은이들 좋아하는 직업 순서대로 하면 된다. 이걸 주장하는 정치 지도자를 고르자. 모두 ‘너부터 개혁하라’고 하는데 ‘내 탓이오’에서 시작해야 한다.

재벌개혁을 말할 때 지배구조 개선, 공정한 하도급, 일감 몰아주기 방지 등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실제 재벌이 무서워하는 건? 경제민주화 이런 거 안 무섭다. ‘법대로’란 말을 가장 무서워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5억 원 이상을 횡령하면 3년 이상 유기징역을 보낸다. 이걸 7년 이상으로 바꾸면 어떨까. 검사가 3년을 구형하면 판사들이 절반으로 깎고, 국가경제에 기여했다면서 집행유예를 시켜준다. 3년 이하의 형은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그러나 7년은 최대 절반을 감형해도 3.5년이라 집행유예가 안 된다. 그러면 소위 재벌도 옥살이를 하느니 한발 물러서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지 않겠나.

의사를 5만 명 늘리면 의대 교수, 병원 간호사와 직원, 약사 등 관련 일자리도 덩달아 20만 개 는다. 의사 수가 적은 건, 의대를 만들고 싶어하는 대학이 많은데 정부가 허가를 안 해 줘서다. 그 외에도 발치료사, 카이로프랙틱, 사립탐정, 독립금융상담사, 로비스트 등의 직업을 기득권층이 막고 있지만 허가해 주면 어떨까. 우리나라는 직업 숫자가 1만 1000개에 불과하지만 미국 3만 개, 일본 2만 5000개가 넘는다. 희망이 없는 게 아니다.

정리=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강연 참석자=박주민(고양일고 1), 최상인(영일고 1), 최민(대동세무고 2), 이하나(신서고 1), 이도현(천안여고 1), 강희영(태원고 2), 배다연(이화여자외고 2) TONG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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