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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대학 등록금 갈등 계기로 본 기여입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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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학가 등록금 투쟁을 계기로 기여입학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이 지난달 31일 중앙일보 대회의실에서 이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기여입학제 도입을 둘러싼 해묵은 찬반 논란이 이날도 되풀이됐다. 왼쪽부터 백태승 연세대 교수, 이재웅 성균관대 교수, 강치원 강원대 교수(사회), 김흥주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제도연구실장, 천세영 충남대 교수. 김태성 기자

▶강치원(사회)=대학가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이 뜨겁다.

▶이재웅=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실정이다. 등록금 투쟁이 극렬할 땐 학교가 한두 달 마비되는 일도 있었다. 등록금이 자율적으로 정해져야 하는데 암묵적인 상한이 있는 듯하다. 또 단체교섭의 대상처럼 돼있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학생들은 더 안 낸다고 하고, 외국처럼 달리 재원을 조달할 방법도 없고, 정부의 지원도 4.7%에 그친다.

▶백태승=사실 등록금은 대학운영에서 결정적이다. 등록금 의존율이 50~90%, 심지어 100%인 대학도 있다. 그게 20~30%가 되지 않는 한 씨름은 계속될 듯하다.

▶김흥주=대학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건 인정한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무단히 올릴 순 없다고 본다. 대학은 사회적 책임이 막중한 공공기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가인상률 이상의 인상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은 오랫동안 있어 왔다. 학생과 대학 간 합의를 존중하는 선에서 결정돼야 한다.

▶천세영=대학을 서비스 산업으로 봤을 때 대학의 고유한 가격 결정 시스템에 대해 학생인 소비자가 가격결정에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정치적 소요가 될 만한 문제인가 하는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요의 대상이 되고 있다. 등록금 의존율이 50%를 넘어가면 소요의 원인이 될 만하다고 본다. 사실 고등교육 재정 전체로 봤을 때 등록금을 올려 재정난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이미 아니라고 본다.

▶이재웅=재정 조달 방안이 마땅치 않다. 사립학교도 국가가 많이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 돈엔 꼬리표가 붙어있다. 지원이 확대될수록 규제나 개입, 간섭도 늘 우려가 있다. 3불 정책 (본고사.고교 등급.기여입학제 금지) 등 정부 규제야말로 대학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건 유럽에서 분명하다. 독일 대학들도 경쟁력이 떨어지자 뒤늦게 규제를 풀고 있다.

▶김흥주=한국의 입시, 사교육 풍토에서 대학이 자율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느냐도 논란거리다. 사립대가 자율성을 갖기 위해선 보다 건전하고 투명한 운영과 국민에게 신뢰감을 줘야 한다. 그런데 재단 전입금 비율이 4년제 156개교 중 72개교가 1% 미만이고, 36개교는 한 푼도 못 내는 실정이다.

▶사회=대학 재정난 타개책으로 기여입학제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백태승=지금 같은 재정 구조 아래에선 세계 유명 대학과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과거 유럽 대학이 모든 분야에서 앞섰지만 요즘 미국 대학에 대부분 뒤진다. 투자를 못 해서다. 미국 하버드대의 기부금은 221억 달러, 즉 22조원이다. 많은 미국 대학이 5조~6조원 수준이다. 그래서 2002년 연세대가 '기여우대제'를 검토했던 것이다. 사회적 기여자에 대한 특별전형이 있다. 하지만 대학에 정신적.물질적으로 기여한 사람에 대해선 이를 못 하게 돼 있다. 이걸 풀어야 한다. 기여입학제는 재정에 돌파구를 여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본다.

▶이재웅=기여입학제는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하나는 대학 재정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에 기부 또는 기여 문화를 확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타임에서 '올해의 인물'로 세 명을 꼽았는데 막대한 돈을 기부한 빌 게이츠 부부가 포함됐다. 사회가 이런 이들을 우대하고 기리는 것에 인색해선 안 된다.

▶천세영=빌 게이츠가 왜 하버드에 돈을 내느냐, 자신의 돈으로 하버드가 클 수 있다는 걸 보아서 내는 것이다. 그러나 기여입학제는 돈을 받고 입학권을 파는 것밖엔 안 된다. 일종의 꼼수이자 편법이다. 또 대학 교육의 근간 자체를 무너뜨리는 제도라고 본다.

▶김흥주=국민정서에 반하고 정당성도 약한 제도다. 지난해 사학진흥재단에서 기부금 실태를 분석했는데 국.공립 216개 대학 중 상위 20위가 모두 사립대였다. 지방대는 8곳이었다. 대학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능력은 개인의 학습능력이지 부모의 기부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기여입학제 도입을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면.

▶천세영=미국을 예로 많이 드는데 사실 미국에선 입학과정이 굉장히 다양하다. 대학이 입학을 허가하지만 들어갈지 말지는 학생이 선택한다. 그 과정은 협상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기여입학제가 작동할 수는 있으나 드러나진 않는다. 공식화되지도 않았다. 우리 같은 입시에선 될 수 없다고 본다.

▶김흥주=우리는 아직 대입 경쟁이 극심해 대입의 공정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여입학제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본다. 돈을 내면 그 자손을 입학시켜주겠다는 건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다.

▶백태승=연세대가 검토한 기여우대제는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대학이라면 즉시 실시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고등교육법 관련 조항은 바뀌어야 한다. 사실 기여우대제로 많은 학생이 정원 내로 입학한다면 문제라고 여겼다. 그래서 정원 외 1, 2% 수준을 검토했다. 최소한의 수학능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도 입시에 임박해 돈을 내고 입학하는 건 현실적 부작용이 크다고 봤다. 오랫동안 학교에 누적된 기여를 봐야 한다고 여겼는데 그게 당시 10년이었다. 주로 손자대에 해당됐다. 대학 간 부익부 빈익빈 우려를 없애기 위해 기여금관리위를 둬 전국적으로 (기여금을 배분)하자고 했다. 당시 추산으로 500억원만 모아도 학부생 모두에게 전액 장학금을 줄 수 있었다. 신규 교수도 100명 채용할 수 있었다.

▶김흥주=얼마 전 대통령이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대통령도 못한다고 했다. 국민 다수가 원치 않는 제도를 정부에 인정해 달라고 할 수 없다. 정원 외를 얘기하는데 그 제도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이재웅=교육에도 포퓰리즘이 있다. 국민 정서를 말하지만 불질러서 분노와 증오심을 고조시켜 정치권에서 이용하는 건 아닌가. 카지노나 복권처럼 도덕적 행위는 아니지만 수익금으로 주택을 짓고 올림픽도 하는 등 건전한 목적에 쓰인 게 있다. 기여입학제도 긍정적인 면이 많다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하버드도 초기엔 재정 조달을 위해 빙고(복권의 일종)를 활용했다.

▶백태승=우리가 기치를 높였을 때 야후에서 긴급 여론조사를 했는데 찬반이 막상막하였다. 대학신문 '연세춘추' 조사에선 학생의 60%가 찬성했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김흥주=지금 인터넷에 떠있는 글을 보면 반대 여론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한 여론조사에선 6대 4 정도로 반대가 많았다.

▶천세영=기여입학제가 세상에 없는 제도고, 입학을 물질적 기여와 바꾼다는 점에서 교육의 본질 자체를 훼손한다는 입장엔 변함없다. 설령 한다면 감옥에 갈 생각을 하고 몰래 하는 게 낫지, 정부의 정책으로 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바로 위헌 소송에 들어갈 것이다. 필요성과 이익을 인정하나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몇 명이 기여입학제로 들어올까 실현 가능성을 보는데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 재정난 타개를 위해선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 우선 등록금을 더 받을 수 있는 대학은 더 받아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국가가 끌어안고 있는 8조~ 9조원대 연구개발(R&D)비를 대학을 통해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공공기관을 통해 한다. 미국은 대학에서 한다. 정부가 지식개발을 통제하면 할수록 왜곡된 현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백태승=등록금을 두 배, 세 배 받을 수 있다면 이 제도가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등록금 저항이 더 클 듯하다. 매번 국민정서, 일부 사학의 입시 부정 등으로 기여우대제가 좌초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성공 못할 제도는 아니라고 본다. 단계적으로 하면 된다. 우선 정부가 대학을 감사할 수 있는지 보는 거다. 그 다음 특별전형을 다양화하고 비물질적 기여자부터 하고 종국에 물질적 기여자로 확대하면 된다.

▶김흥주=20년간 기여입학제를 주장하면서 사립대가 줄기차게 얘기한 게 재정 부족으로 대학발전이 어렵고 국제경쟁력이 약해지며, 현재 재정 확보의 유일한 방안이 기여입학제니 열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상당수 대학이 차분히 잘 운영하고 있다. 재정 문제는 국고보조금을 확충하고, 재단전입금을 늘리고 세제 혜택 등을 확대하는 게 낫지 기여입학제로 자꾸 여론을 자극하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

▶이재웅=규제 논리만 갖고 어떻게 경쟁력을 강화하겠는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해선 안 된다. 국민을 내세워 기여입학제 도입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과적으로 열악한 고등교육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볼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서도 기여입학제는 필요한 제도다.

<참석자>

백태승
연세대 교수

이재웅
성균관대 교수.한국경제학회장

김흥주
교육개발원 교육제도연구실장

천세영
충남대 교수

강치원
강원대 교수(사회)

정리=고정애.이원진 기자 <ockham@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