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나랏돈으로 벤츠 굴리고 루이비통 산 유치원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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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 중 상당수는 한마디로 ‘세금 도둑’이었다. 아이들의 교육과 보육에 써야 할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빼돌려 자녀 등록금과 해외여행비 등 사적으로 마구 유용했다. 믿기지 않는 ‘도덕적 해이’를 접한 엄마들은 분노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부패척결단이 내놓은 전국 9개 광역시·도 어린이 시설 95곳의 점검 결과는 너무 충격적이다. 4곳만 정상이었을 뿐 91곳에서 609건(205억원)의 자금운용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사립 유치원(182억원)이 특히 심했다.

전체 원생 수가 1500명을 넘어 ‘유치원 왕국’ 설립자로 불리는 경기도의 한 유치원장은 벤츠·아우디·BMW 등 외제차 3대를 굴렸다. 그러면서 차량 보험료 1400만원을 유치원 돈으로 냈고, 2500만원 상당의 도자기 구입비와 사학연금 납입금도 돌려막았다. 교육청 감사를 막으려 담당 공무원에게 ‘골드바’를 선물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생선가게의 고양이처럼 2년 반 동안 39억원을 빼돌렸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또 다른 유치원장은 250만원 상당의 루이비통 가방과 두 아들 등록금, 83차례의 경조사비 등 11억여원을 유용했다.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에 교육자재를 대주거나 가족 이름으로 회사를 차려 운영비를 쓴 원장도 있었다. 온갖 수법을 동원해 정부 지원금을 빼먹은 것이다.

이번 조사는 빙산의 일각이다. 전국의 유치원·어린이집은 5만1400곳으로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에만 연간 4조원이 지원된다. 그런데 95곳의 샘플 조사 결과가 이 정도라니 아찔할 뿐이다. 무엇보다 정부·교육청·자치단체의 책임이 막중하다. 누리과정 예산 싸움에만 매달려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 중대한 행정과실이자 직무유기다. 그런 틈을 노린 원장들이 돈을 빼돌리는 바람에 교사들이 박봉에 시달리고, 아이들이 1000원짜리 급식을 먹었던 게 아닌가. 당장 전수조사와 함께 투명한 회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비리 원장에 대한 형사 고발과 유용액 전액 환수, 실명 공개도 필요하다. 아이들을 이용해 사리를 채운 원장들에게 본때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