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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양사건 관련자 논고요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언
이 사건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금액의 빚을 진 부실기업의 임원으로서 일하던 피고인들이 사주인 회장과 공모하여 1천7백만달러 상당의 막대한 외화를 국외로 도피시켜 오다가 경영진 내부의 불화로 인해 노출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도피된 외화의 액수가 엄청나고,범행이 이루어진 회사가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부실기업이며, 도피된 외화의 상당부분이 개인의 사치와 허영을 충족시키는데 낭비되었다는 점에서 일반국민들에게 크나큰 배신감·허탈감·위화감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기업인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타락하였으며 인간적 2중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기업인과 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더욱 비뚤어지게 하는, 치유될 수 없는 상혼을 국민들의 마음속에 남겼다고 하겠읍니다.
◇정상 ▲피고인들은 1조원이라는 부채를 안고 있는 부실기업의 임원으로서 7년간에 걸쳐 한화로 환산하여 1백억원 가까이 되는 1천7백여만달러의 외화를 구조적으로 유출하여 왔습니다. 그것도 해운불황이 심화되어 회사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할 때부터 더욱 대규모적으로 외화를 유출하였읍니다.
▲몇 푼의 외화를 소지하는 것조차 비난하고 자나깨나 외채걱정 때문에 한푼의 달러도 아껴 써야 한다고 주장해 온 전체 국민들의 법 감정으로 보면 피고인들의 이 사건 범행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될 수 없다고 봅니다. 더우기 피고인들의 범양은 부실기업을 더욱 부실화시켜 피땀 흘려 일하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켜 놓고, 나아가서는 부실기업을 회생시켜보려고 노력해온 정부당국의 신뢰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 결과를 초래하였읍니다.
▲특히 피고인 한상연의 경우에는 미국에 거주하며 부동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피고인의 동생 한상익을 박건석에게 소개시켜 주어 박건석으로 하여금 미국 내에 투자를 하도록 주선해줌으로써 외화유출의 동기를 제공한 점, 그후 이 사건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계속 유출된 외화의 상당부분이 박건석이나 그 가족에 의해 소비되었다 하더라도 범양상선회사주식의 3%지분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출된 외화 중 뉴욕지사 경비로 소비한 나머지의 8%는 피고인의 몫이라고 주장하며 회사자금담당임원·뉴욕지사장과 구체적인 유출방법을 숙의해가면서 이건 외화유출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으로 보아 그 책임을 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고, 그리고 뉴욕지사장에게는 동인이 자필로 작성하여 피고인에게 보내주는 외화비밀자금 수지보고서를 그때마다 파기하도록 엄명해두었음에도 피고인은 이를 은밀히 보관하고 있다가 그것도 유출된 외화가 국내로 송금되어온 사실이 기재되지 않은 것만 가려내 국세청 조사과정에서 제출한 점에 비추어 인간적 동정을 받을 여지도 없다고 하겠읍니다.
▲또한 나머지 피고인들의 경우 이 사건 범행가담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자신들은 회장이나 사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전례를 답습하였을 뿐이므로 모든 책임은 회장이나 사장이 져야한다는 태도로 시종일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과연 진정으로 그들의 엄청난 범죄에 대하여 반성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피고인들은 이번 범행을 통하여 사주와 은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그 구성원 개개인의 투철한 사명감을 통하여 완수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어떠한 부정도 감행해 왔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이들 역시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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