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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김준영 특파원 말레이시아 르포] 김한솔 입국설 미스터리 … “시신 인도 요구한 유족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21일 오전 1시40분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병원에 복면을 한 무장 특공대와 사복경찰 수십 명이 출동했다. ‘김한솔(사진)의 방문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한솔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경찰은 1시간30분가량 머문 뒤 철수했다. 병원을 빠져나가는 경찰 차량 뒷좌석에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목격됐지만 그가 한솔인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병원 새벽 한때 특공대 삼엄한 경계 #보건장관 “그가 왔다면 외교부 소관” #한국 당국자 "지금은 위험한 시기 #한솔 말레이시아행 실익 없어” #중국은 “대화로 해결” 원칙론만

전날 저녁 현지 매체를 중심으로 김정남의 아들 한솔의 말레이시아 도착 루머가 전해진 후 내외신 취재진은 물론 국제외교가의 관심은 온통 한솔에게 쏠렸다. 그러나 한솔의 행방은 이틀째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한솔의 도착 여부에 대해 직답을 하지 않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다툭 세리 수브라마니암 보건부 장관은 “그가 왔다면 접촉은 외교부 소관이며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입을 닫았다. 압둘 사마흐 마트 말레이시아 셀랑고르 지방경찰청장은 “김정남의 시신 인도를 요구한 유가족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김한솔의 말레이시아 도착 여부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그가 신변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보 당국자는 “현 시점에서 한솔이 말레이시아까지 가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며 “한솔이 지금 움직이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남의 지문과 공항 폐쇄회로TV(CCTV) 영상 등으로 사망자가 김정남임이 확인된 상태에서 굳이 한솔이 말레이시아까지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정남의 시신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표면적인 당사국은 말레이시아와 북한이지만 한국과 미국·중국도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김정남의 유족을 보호해온 중국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배경엔 북ㆍ중 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날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국들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내놓았다. 다만 이번 사건을 ‘북한 국민의 말레이시아 피살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김정남 암살에 따른 외교 갈등으로 인해 본국의 소환명령을 받은 모하맛 니잔 주북한 말레이시아 대사가 21일 평양을 떠나 중국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모하맛 대사는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으로부터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 어떤 것도 숨기지 않았다”며 북한 측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베이징 AP=뉴시스]

김정남 암살에 따른 외교 갈등으로 인해 본국의 소환명령을 받은 모하맛 니잔 주북한 말레이시아 대사가 21일 평양을 떠나 중국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모하맛 대사는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으로부터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 어떤 것도 숨기지 않았다”며 북한 측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베이징 AP=뉴시스]

북한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북한으로선 사건 은폐가 최선이다. 이를 위해선 김정남 시신의 조기 인수가 필수다. 북한이 김정남을 암살한 것으로 결론 나면 김정은은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는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가 외교적 관례를 깨고 말레이시아 당국을 맹비난한 이유다. 김정남과 김정은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말레이시아의 대북 대응은 강경하다. 속내는 관련국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말레이시아의 사건 처리 역량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남성 용의자들의 검거에 실패했다는 부담도 안고 있다. 경찰과 병원 측이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남, 성혜림 묘 있는 러시아 묻힐 수도”

미국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한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는 김정남의 이모이자 가정교사였던 성혜랑의 망명을 받아들인 전력이 있다. 그의 아들은 한국으로 망명했다가 남파 공작원의 총격(1997년 2월)으로 숨진 이한영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트럼프 정부가 북한 정권의 속성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김정남의 시신이 북한과 중국이 아닌 제3국으로 향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럴 경우 러시아가 물망에 오른다. 김정남은 생전에 모스크바에 있는 어머니 성혜림의 묘를 여러 차례 찾았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유족 동의하에 시신을 화장해 모스크바로 가져갈 경우 북한도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경우 관련국들의 양해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신경진·김준영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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