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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로봇 반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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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1959년 미국 뉴저지주 트렌턴의 GM 공장 주조라인에 1.2t짜리 낯선 기계 한 대가 설치됐다. 엔지니어 조지 드볼과 조셉 엥겔버거가 처음 만든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Unimate) #001’이었다. 기계의 강철 팔이 자동으로 형틀에서 부품을 꺼내 옆으로 옮기자 근로자들이 환성을 터트렸다. 무겁고 위험한 일을 하다 다치는 사람은 다시 없을 터였다. 대중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로봇이 TV에 등장한 건 1966년 NBC 텔레비전 ‘투나잇 쇼’가 처음이다. 진행자 자니 카슨이 개량형 로봇 ‘유니메이트 1900’에게 이런저런 ‘묘기’를 주문했다. 골프공을 집어 컵에 넣고 맥주를 따르는 따위의 일이었다. 팔을 흔들며 악단을 지휘하는 시늉을 내게도 했다. 시청자들은 사람이 필요 없는 기계가 다 있다며 신기해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기함은 걱정과 우려로 변해 갔다. 로봇으로 무장한 GM의 생산성은 두 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경쟁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로봇 도입 경쟁에 나섰다. 그때마다 수천 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급기야 1994년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로봇세(稅)’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기업들이 최신설비를 도입해 실업률이 높아지니 로봇세를 거둬 재교육과 실업수당으로 충당하자”는 거였다. 반응은 조롱 일색이었다. "산업경쟁력을 높여야 할 글로벌 시대에 무슨 황당무계한 얘기냐”는 거였다. 그의 발언은 전 세계에 해외토픽으로 타전됐다.

불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세계 경제의 주류인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로봇세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 집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는 로봇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로봇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차지한다면 그들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가세했다. 로봇의 윤리와 역할, 법적 지위에 대한 고민도 시작됐다. 유럽의회는 "로봇세 도입에 반대하지만 로봇 개발과 배치에 대한 윤리적 체계와 책임에 대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기업에 법인 자격을 주는 것처럼 로봇에 전자인간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선진국조차 로봇이 야기한 경제·사회적 충격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워졌다는 방증이다. 중국 다음으로 산업용 로봇을 많이 가진 한국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이미 국회에서 ‘기계 과세론’이 등장했다. ‘강제 노동’ 혹은 ‘노예’라는 의미의 체코어인 로봇이 반세기 만에 세상을 참 많이 바꿔놨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