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은 교각살우” 정부도 재계도 우려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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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 예정인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가 잇달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주주 권한 제한, 집중투표제 담아 #유일호 “경제 상황 녹록지 않은데 … ” #대한상의 “규제 과도” 반대보고서 #“경제 활성화 법안부터 통과돼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0대 국회가 발의한 590여 개 경제 관련 법안 중 규제 법안만 407개”라며 “경제 활성화 법안은 (통과가) 안 되고 있는데, 경제를 규제하는 법안은 쓰나미에 휩쓸리듯 한꺼번에 통과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0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유 부총리 초청 CEO 조찬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0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유 부총리 초청 CEO 조찬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유일호 경제부총리 초청 CEO 조찬간담회’에서다.

박 회장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표현을 써가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교각살우는 ‘소의 뿔 모양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문제점을 고치려고 시도하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행위를 지칭한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등 일부 상법개정안 내용은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과도한 규제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경제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지난 8일 대주주 권한을 대폭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반대보고서를 만들어 각 정당에 공식 전달한 바 있다. 이날 무역업계도 상법개정안을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16일~17일 전국 무역업계 대표 28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무역업계 최고경영자(CEO)의 82%가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했다. 응답자들은 ‘상법 개정안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공정한 경영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기업환경 악화시킬 수 있다’며 국회가 개정안 처리에 ‘반대(50.5%)’하거나 ‘신중(31.8%)’할 것을 촉구했다.

또 무역업계는 지난해부터 반년 이상 국회에서 계류 중인 경제활성화 법안을 조속히 통과해달라고 요청했다. 설문조사에서 무역업계 관계자들은 규제개혁특별법(75.6%)·규제프리존특별법(70.0%)·의료법개정안(67.8%)·은행법개정안(56.9%)·서비스산업발전법(52.6%) 순으로 빠른 처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한국무역협회는 20일 국회 여야 원내대표·정책부의장·관련 국회소위원회를 방문해 이와 같은 무역업계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도 지난 16일 ‘기업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단체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재계에서 우려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대한상의 조찬간담회에 참석해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규제 법안이 자꾸 나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분적으로 그런 법안을 도입한다면 현재 한국에 거의 없다시피 한 경영권방어 제도도 같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회 입법 과정에서 문제점을 줄일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박용만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에 대해 “(이 부회장이) 젊은 사람인데 너무 안타깝다”며 “빨리 (특검) 수사가 마무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박 회장은 특검수사가 다른 기업으로 확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언급할 일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박진석·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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