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조작설 해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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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4일 민주당의 김태룡 대변인은 총재단회의를 마치고 다급한 목소리로『오늘은 굵직한 발표건이 있다』고 해 보도진을 긴장시켰다.
그는 앞뒤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재무부·증권감독원·일해재단이 공모·결탁, 증권을 조작해 일해재단이 2조원의 폭리를 취했으며 이 돈이 민정당 정치자금으로 흘러간 의혹이 짙어 진상조사특위 구성을 요구키로 했다』고 흥분했다.
80년대 들어 장영자 사건·명성사건을 겪은 터이고 공화당창당 때의 증권파동도 있었기 때문에 「혹시」하는 마음에서 『증거를 확보했느냐』 『공당으로서 책임질 수 있는 결정이냐』며 여기저기서 확인을 다그치는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김대변인은 『그런 풍문이 있어 내부조사를 해보니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룬 이날 하오의 국회 재무위에서 민주당이 말한 「근거」는 끝내나오지 않았다.
여당은 『구태의연한 흑색선전』이라며 『증거를 대라』고 항의했고 정부당국자는 『조사결과 문제의 재단이 단 한 주도 가진 게 없으며 몇 백억 원의 자산을 가진 재단이 주식을 투자해 단기간에 몇 조원을 벌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부인했다.
당사자인 김봉욱 의원은 답변이 궁해지자 『증권시장에 루머가 나돌아 총재단 회의에 보고한 것 일뿐』이라고 발뺌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만 것이다.
취재해보니 김의원이 며칠 전부터 『큰 건을 잡았다』며 국정조사권 발동 결의안을 들고 당의 여러 곳을 찾아다녔으나 실무자들이 『전문지식은 고사하고 간단한 주가 상승률로만 계산해 보아도 너무 터무니없어 발의를 미루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무자조차 상식선에서 납득을 못해 서랍에 처박아 놓았던 안건을 당 최고 간부인 총재단회의에서 단 몇 분간의 보고를 받고 당론으로 쉽게 결정해버린 것이다.
이 해프닝으로 주식 값이 사상 최대로 폭락했다. 이 폭락으로 손해 본 사람들에게 민주당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수권정당을 자부하는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크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상식의 정치다.
철인왕의 지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상식만이라도 갖춰달라는 것이 지나친 요구일까.
문창극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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