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스캔들 여파 몸 사리는 미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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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과 보좌관들이 서로 자기 밥값을 내겠다고 다투고 있다."

잭 아브라모프의 로비 스캔들이 워싱턴 정가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공화.민주당이 앞다퉈 부패 방지법안을 준비하면서 로비업체들이 몰려 있는 워싱턴 중심가의 'K스트리트'에도 전례 없이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

최근 LA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로비 스캔들 이후 워싱턴의 의원과 보좌관들이 로비스트와 식사를 피하는 것은 물론 이미 예정됐던 현장 방문 프로그램도 줄줄이 취소시키고 있다.

전국옥수수경작자협회의 존 도겟 부회장은 얼마 전 의원 보좌관들에게 '밥이나 먹자'고 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더 이상 로비스트와 점심을 먹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12달러짜리 햄버거 하나가 의원들의 표결에 영향을 주겠느냐"며 다시 제의했지만 돌아온 답은 똑같았다.

의원들의 몸 사리기는 각종 현장 방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첨단기술 업체들의 로비를 담당하는 정보기술산업평의회는 최근 의원들의 실리콘밸리 방문을 취소했다.

미식축구경기장의 로열박스에도 정치인들의 모습을 당분간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은행 업계의 한 로비스트는 올해는 워싱턴 지역의 미식축구팀인 레드스킨스의 시즌 입장권을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표를 사놓아 봐야 데려갈 사람이 없다"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해리 레이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자신의 보좌관들에게 로비스트로부터 어떤 선물이나 식사 대접도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 의원실은 아브라모프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50달러 미만의 선물이나 식사는 허용하고 있었다.

로비스트들의 불만도 높아가고 있다. 스캔들 탓에 로비스트의 긍정적 기능마저 매도당하고 있다는 항변이다. 도겟 부회장은 "우리로서는 농장에는 가 본 적도 없는 스물다섯 살짜리 보좌관에게 미국 농업의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은 셈"이라고 한탄했다.

의회 주변의 식당들도 매출이 줄었다며 아우성이다. 의원회관 인근에서 고급 프랑스 식당을 경영하는 데니스 시리예프는 "로비 스캔들이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정말 힘들게 한 해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가 로비스트와 의원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주장에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현재 K스트리트에서 활동 중인 로비스트는 약 2만7000명, 한 해 로비에 드는 비용은 21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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