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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과함께읽는명사들의시조] 박정희 전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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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970년대 초반 우리 사회는 한때 시조 짓기 열풍에 휩싸였다. 이유는 명료했다. 대통령이 시조를 썼기 때문이다. 그 시절, 대통령이 나서 충무공 시조 화답집 '한산섬'에 시조를 써서 바치니 각계 명사들도 줄줄이 시조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최규하 전 대통령, 민복기 대법원장, 김현옥 서울시장, 유진산 신민당수, 임영신 중앙대 총장, 윤웅열 공군 작전사령관 등등. 직함만 봐서는 시조와 관계없을 것 같은 면면이 시조를 발표했다.

그때 그 시절 '충무공'은 절실한 구호였다. 충무공의 구국일념처럼 '잘 살아보자'는 투지로, 멸공통일의 애국심으로 똘똘 뭉치게 할 국민적 영웅과 강력한 지도이념이 필요했다. 그래서 광화문에 동상을 세우고 현충사를 성역화해 충무공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모자랐나 보다. 국민의 정서적 각성엔 미치지 못했나 보다. 마침 그때 박 대통령과 '애국으로 통한 지우요 정신적 혈맹'으로 통했던 인물이, 현대 시조의 스승이었던 한국시조작가협회 이은상 회장이었다. 아마도 그는 충무공의 이 시조 한 수를 기억해냈으리라.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그리하여 대통령에게 이 시조의 답가를 써보라고 권했을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시작된 '시조 열풍'이었지만 작품의 질이 형편없던 건 아니었다. 충무공 순국 400주년 추모문집에 실린 정일권 전 총리의 '거북선'이란 작품을 보자. '전란이 걷힌 땅에 동백꽃 붉게 피고/건설의 망치소리 산울림에 젖건마는/거북선 그 날 그 생각 더워오는 눈시울.' 보릿고개를 넘어 길을 내고 집을 짓던 시절의 서정을 붉은 동백꽃으로 애틋하게 묘사하고 건설의 망치소리가 산울림에 젖는다는 감각적인 표현으로 이 시조는 단순한 추모시의 격을 넘어섰다.

충무공이 나라의 운명을 놓고 '깊은 시름'에 빠졌던 것처럼 오늘 시조계는 시조의 운명을 놓고 깊이 시름한다. 70년대 시조 열풍은 정치적인 이유로 비롯된 것이었지만,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솔직히 그때가 부럽다. 지금은 정치적인 이유로도 시조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 홍성란 시인은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89년 중앙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시조집 '바람 불어 그리운 날' '따뜻한 슬픔' 등 다수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중앙시조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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