變色<변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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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색은 물리적·화학적 변화로 물체 색깔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퇴색(退色)도 변색의 일종이다. 변색처럼 다양하게 활용되는 단어도 흔치 않다. 얼굴색을 가다듬는 것도 변색이다. 논어 향당(鄕黨)은 ‘진수성찬을 대접받으면 반드시 낯빛을 가다듬고 일어서야 한다(有盛饌,必變色而作)’고 권한다. 상황 변화도 변색으로 상징한다. 명나라 말기 시인 염이매(閻爾梅)는 “봉우리 색 변하고 해 넘어가니 도적들이 칼 차고 묘지를 걸어간다(遠峯變色暗夕陽, ?賊持兵走荒墓)”라며 당시의 험난한 세월을 개탄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변색은 변절(變節) 혹은 훼절(毁節)의 뜻도 강하다. 그런 탓인가, 중국 황제들은 변색 게임으로 신하 놀리기를 즐겼다.

청 황제 건륭(乾隆)이 강남(江南)을 유람할 때다. 갑자기 신하들에게 “학(鶴)을 읊으라”고 명했다. 신하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시인 풍성수(馮誠修)가 나섰다.
“학 한 마리 날아온다. 주사(朱砂)로 목 두르고 눈(雪)옷 입었네(眺望天空一鶴飛, 朱砂爲頸雪爲衣)”

황제가 돌연 “흰 학 말고 검은 학”이라고 말했다. 풍성수는 일각의 주저함도 없이 “먹이 찾느라 늦어지는 바람에, 왕희지가 붓 씻는 연못에 잘못 떨어졌구나(只因覓食歸來晩, 誤落羲之洗硯池)”라고 슬쩍 색을 바꿨다. 백학을 순식간에 검은 학으로 변색시킨 것이다. 황제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명나라 재상 해진(解縉)이 영락(永樂)제를 모시고 화원을 산책했다. 황제가 맨드라미로 시 한 수 지으라고 명령했다. 해진은 “맨드라미는 본시 연지처럼 붉은데(鷄冠本是?脂紅)”라고 운을 떼자 황제는 “붉은색 말고 흰색”이라고 가로막았다. 해진은 태연하게 “오늘은 어찌 옅은 화장인고? 새벽 알리려 오경까지 기다리다 머리 한가득 서리를 이었구나”라고 노래했다. 붉은 맨드라미가 순식간에 흰색이 됐다.

시인의 변색은 풍류요, 범인(凡人)의 변색은 무죄다. 하나 정치인은 다르다. 이유 없는 변색은 변절이고 훼절이다. 한가지 사안을 두고 변색을 반복하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속절없이 변색하는 정치인부터 정치 무대에서 솎아낼 일이다.

진세근

서경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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