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싣고 달리는 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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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가장 안전하다는 열차마저 툭하면 대형 참사니….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되풀이되는데도 철도청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10일 서대전역 매표구에서 서울행 무궁화호 승차권을 구입하던 金모(51)씨는 지난 8일 발생한 경산역 추돌사고를 떠올리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 이번 사고의 직접 원인으로 드러나고 있는 '기관사와 역무원 간의 무선교신 착오'와 '기관사가 전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운전 부주의'로 올 들어서만 석달 간격으로 세 번 이상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월 호남선 정읍역 부근 철로 위에서 침목교체 작업을 하던 인부 7명이 숨진 사고, 지난 5월 경남 양산과 서대전역 부근에서 각각 발생한 탈선사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철도청은 안전시설을 도입하는 데만 치중할 뿐 새로 도입된 안전시설에 대한 운행기법 등 시설 관리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 유사 사고 재발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불안한 운행=올들어 지난달 말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열차 승객 사고는 2백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백25건)에 비해 75건(60%)이나 늘었다. 이로 인한 사망자는 36명으로 지난해보다 17명(89%), 부상자(2백25명)는 64명(40%) 증가했다.

최근 발생한 사고의 대부분은 상식을 벗어난 철도 종사자들의 안전불감증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15일 전북 정읍시 감곡면 호남선 감곡역 1백50m 전방에서는 철도청이 열차 선로 변경 사실을 기관사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아 선로 해체작업을 하던 인부 7명이 무궁화호에 치여 숨졌다. 이에 앞서 5월 30일엔 경부선 물금역 부근을 달리던 무궁화호가 정비 불량으로 객차 연결고리가 끊어져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고속철도 개통 준비 등으로 사고가 예견되는 공사구간이 늘었는 데도 당국의 대비가 허술해 사고를 부른 예도 적지 않다. 지난 5월 대전 지하철 철재빔 추락으로 40여명이 중경상을 입은 열차사고, 이번 대구 열차 추돌 사고가 이 같은 경우다.

철도 노사관계가 불안에 따른 운행인력 부족도 사고를 부르는 한 요인으로 지적됐다. 지난 6월 철도파업 당시 대전 가수원역에서 대체 투입된 기관사가 역무원을 치어 발목 절단 사고를 냈다. 또 파업 참가자 대규모 직위해제로 인한 인력 부족으로 11개 노선 22개 열차가 두 달째 운행중단 상태에 있다.

?대책=한국철도기술연구원 왕종배 박사는 "철도 안전시설에 대한 투자는 어느 정도 이뤄졌으나 시설 관리 등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한 게 우리의 철도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철도 종사원들에게 전문적인 안전관리 교육을 시키거나 선진국의 안전관리 기법을 도입해 활용하는 등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철도청은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안전관리 체계를 재정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대전=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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